New York에서 만난 실향민 사장님-영어가 늘은 곳

by 원우

학교를 겨우 원하는 곳으로 옮기기는(Transfer) 했지만 등록금 낼 길이 요원하기만 하다. 아버지는 몇 년 전 군대에서 퇴직하시고 나서 민간기업에 일을 잡으셨는데 엄마와 아버지의 대화 속에서 일하시는 직장에서 곧 나오실 예정인 것 같고 지금은 9월인데 내년 1월에 갈 새 학교에 등록금은 어디서 마련해야 할지앞이 캄캄하다.


다행히 학비가 싼 학교(1 credit에 150불이고 한 학기에 9학점 듣으니까 1,350불 1년에 최소 2,700불+가 필요함)에서 admission을 받았고 학업기간 동안 학교 내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생활비는 벌 수 있는 것 같은데 학비가 문제였다. 급한 대로 Bronx Grand Concourse(South Bronx로 Harlem에 인접한 이민초기 교포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다른 지역보다는 rent비가 저렴하지만 치안은 안 좋고 전철이 좋은)에 있는 몇 년 전 이민오신 친척한테 손을 벌리기로 하였다.


친척한테 “ Manhattan에서 10월부터 12월까지 학교 가기 전에 등록금 벌려고 일하고 싶은데 잠자리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친척은 이민 온 지 얼마 안 되어 안정이 안된 상태였고 또한 최근 인수하신 잡화점일로 바쁘시고 나보다 어린아이들은 중 고등학생이어서 집안팎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는데 내 사정이 딱한지 “ 그래 잠자리는 있는데 너한테 신경은 많이 못쓰니 들어와 있어라”하고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다.


그 당시 Manhattan Broadway근처 에는 돈을 단시간 내에 많이 벌 수 있는 Job으로는 도매청과물점에서 일하는 것이 있어 그쪽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주로 Broadway와 32nd street근처에 많았는데 주급이 350불가량 되어서 1달 벌면 내가 한국에서 대기업직장에서 받았던 급여보다 많았고 3달 벌면 친척한데 주는 숙박비를 제외하고도 3,000불가량 되어서 처음에는 그쪽으로 알아보고 interview까지 마쳤다. 출근을 앞두고 하루는 친척이 그곳에서 일하면 몸이 특히 허리가 망가진다고 강력히 말리셔서 친척제안대로 좀 덜 일하는 장난감도매상에 취직을 하였다. 급여는 주당 50불 정도 적었지만 노동시간이 아침 8시 반부터 6시까지 일하고 Lunch break는 30분 조건으로 일을 시작했다.


주로 하는 일은 각 지역에서 온 장난감 도매상가게에서 온 손님 order 받는 것 도와주고 order가 끝나면 옆건물창고 2층에서 물건 꺼내여 차에 실어주는 일을 주로 하였다. 처음에는 체력도 단련되는 것 같아서 좋아했는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점차 무거운 중국산 소형기차세트를 주문이 밀리면서 2달을 지내고 보니 몸이 나사 풀린 사람처럼 입도 잘 안 다물어지고 눈은 항상 출혈되어 있고 잠을 자고 나면 진이 빠지는지 아랫도리가 축축하고 하여서 이렇게 일하면 학교도 못 갈 것 같아 일이 약간 수월한 Central Park 한국대사관 근처에 있는 Gift shop으로 옮겼다.


이 Gift shop사장님은 면접 때 솔직히 아버지가 군인이셨는데 퇴역하셔서 내가 공부할 학비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자기도 군 출신이라고 하면서 고용을 해 주었다. 연세는 우리 아버지와 비슷하고 키는 우리 아버지 보다도 작은 단신이시고 미국을 어렵게 오셔서 많은 고생을 하시다가 돈을 모아 가게를 인수하신 분이셨다.


직장에 다니는 백인이 주 고객인 그곳에서 나는 점원으로 일하면서 영어가 많이 늘었다. 손님이 사려는 물건을 쭉 이야기하면 복창하고 그 물건을 가져다주고 그리고 물건을 다 골랐으면 계산 전데 그 물건을 다시 한번 같이 확인하고 --- 이렇게 1달을 보내니까 내 혀가 미국사람처럼 굽혀지는 것이 느껴졌다.


영어란 이렇게 배우는 것 아닌가. 미국인의 order를 알아듣고 복창하고 다시 계산 전에 설명하고 이러한 과정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까 나는 영어청취력과 발음이 쑥쑥 크게 느는 걸 몸소 느꼈다.


사장님은 하루도 안 쉬고 가게문을 여신 분인데(집은 New Jersey였다) 급여는 장난감 도매상보다는 약간 적게 주는 것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extra work이 필요하면 자기가 아는 보석상을 소개해 준다고 하여서 면접도 몇 번 보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NY의 보석상은 이북출신들이 많은 걸 알았고 그분들이 어렵게 미국에 오셔 힘들게 일하면서 성공을 하신 분들을 몇 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gift shop도 Christmas가 대목이라 나는 그 보석상에서 extra로 일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만 나를 도와주려고 보석상을 소개해준 그 주인아저씨를 잊을 수 없다.


점심은 주변에 한국음식점이 많아도 그분은 항상 Pizza를 시켜 우리와 같이 드셨는데 내가 가장자리는 안 먹고 cheese가 있는 부분만 먹으니까 음식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까지 주셔서 나는 나쁜 습관을 고치게 되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 우뚝 서신분 때로는 우리 아버지처럼 원칙주의자라 깐깐하지만 자상하신 그 사장님은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고 아침에 시간도 맞춰 매일 출근하니까 어느 날 시간이 날 때 자기 이야기를 해 주셨다.


6.25 전쟁이 나기 전 황해도에서 공산당의 압제를 피해 단신 월남하셔서 육군에 입대하여 정보장교로 오래 근무하셨는데 과거 정권의 잘못된 XXXXX로 강제로 군복도 벗고 미국으로 도피 아닌 도피를 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가진 돈이 하나도 없어 NY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Gift shop을 인수하시게 된 이야기 등—


지금도 나의 은인인 그 사장님이 그립다. 그 사장님 덕분에 3000불 정도를 마련하여 학교를 갈 수 있었고 학교 간다고 떠날 때 Cool하게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학자금까지 보태주신 분---

나는 미국에서 아버지 같은 분을 얻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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