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니까 친구들을 포함 주변사람들이 묻는다. "참 오랜 시간 미국에서 잘 버텼다고 하면서 지금은 여기서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이 많은데 너는 어떻게 반대로 한국으로 돌아왔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나라 내 조국에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계신 곳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대답을 해 주었다. 그리고 첨가해서 미국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mature 되지 않는 것 같아 친구들과 같이 늙고 싶어서 돌아왔다고 이야기해 주면서 우리 주변 현인의 말씀 " 하나를 놓아야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즉 미국처럼 생존을 위해 아무것도 놓을 수 없으면 자연스럽게 늙을 수 없다"는 나름대로의 의견도 같이 말해 주었다.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속으로는 나는 되묻고 싶다. 언어문제로 항상 고통받고 무슨일이 생겨도 주변에 모두 타인이라 한국처럼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곳 한번 누구를 만나려 가려해도 여기처럼 싼 지하철이나 광역버스가 없어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 곳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에서 내 증상을 의사에게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의 두려움 도처에 총이 있어 항상 긴장해야 하는 곳 Credit이 없어 은행 loan이 안 되는 곳 LA사태에서 보았듯이 공권력에 무작정 의지할 수 없는 곳 그리고 하던 일이 잘못되어 파산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위에 손벌릴 곳이 하나도 없는 곳 주말이면 친구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늙고 싶은데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는 곳 그리고 보이지 않게 차별을 받는다는 기분이 드는 곳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누가 물어보면 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지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총기는 개인적인 경험을 2번 하고 나서 이곳에 사는 것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군대 시절에도 사격을 싫어하였는데 그 총으로 누구의 생명을 뺏는다는 것을 가능한 한 거부하고 싶고 그 소리가 싫어서 미국에 있어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한국계 동료들도 호신용으로 집에 총이 1자루 이상 있지만 나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빌면서 총 없이 버티며 살았다.
총에 관한 경험 중 하나는 미국교포친구와 부동산개발사업을 같이 하였는데 건물 완공 후에 건물 관리인으로 Mexico계 관리인을 데리고 있었다. 그 건물 관리인은 총 관리인 밑에서 간단한 수리와 방범 그리고 안전관리를 하는 일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말과 달리 경험이 별로 없어 간단한 수리도 외부에서 사람을 부르는 일이 생기게 되어 그 사람을 내 보내게 될 상황에 처했다. 그 친구는 붙임성이 있어 자주 점심도 같이 먹으러 가서 가끔 그 친구차를 얻어 타고 점심 먹으러 간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항상 차 안에 총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자랑삼아 보여주기도 하였다. 나는 그 친구를 내보내야 할 입장이었지만 총 맞는 것이 두려워 몇 개월을 방치한 적이 있다. 얼마 후 내가 그런 책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이 내 역할(미국백인)을 하게 되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떠났다.
2번째 경험은 일식당을 운영할 때였는데 같은 상가(Shopping center) 안에 있는 극장증축공사를 공사기간 보다 오래 해서(공사를 하면 주차장에 건설장비를 가져다 놓고 공사를 하므로 소음과 공사장비와 공사자재로 내 영업에 지장이 많다) 하루는 답답한 마음에 공사기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check 하려고 무슨 장비와 자재가 남아있는지 확인하려 공사장비와 자재가 있는 철제펜스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저녁시간이었는데 저쪽에 있는 우리 상가를 지키는 백인 경찰이(내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가까이 와서 반갑게 인사하려는 순간 그 자리에서 Freeze 시키더니 내 뒤에서 Hands up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영어를 못 알아듣고 딴짓을 하거나 그 명령을 뭉갰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렇게 나에게는 무서운 나라가 미국이다. 거길 좋다고 이민 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위에서 처럼 그대로 이야기해 준다. 하지만 미국은 내가 재기해 줄 수 있게 한 고마운 나라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내 나라가 아니고 주변에 모든 것이 세월이 가도 익숙해지지 않아 미국에 처음 온 젊은 시절부터 이곳은 잠시 내가 할 일을 하기 위해 머물 수는 있어도 영주 할 생각은 없는 나라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본 질문이 있다. IMF때 부도나서 미국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있냐고-아직 그런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처럼 한국에 돌아오려고 그렇게 원했으나 못 돌아오신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써 보기로 하였다.
누가 나에게 어떻게 돌아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에게 한국에서 2 사람의 은인이 있다는 있다는 말을 한다. 한분은 내 직장 상사인데 내가 외국계기업에서 Venture기업으로 옮겨 월급이 반토막 났는데 비상장 자회사 주식을 Incentive로 주셔서 그 주식을 미국에 있는 동안 15년 동안 가지고 있다가 그 회사가 상장된 후에 매각하여 미국에서 어느 정도 생활을 하게 해 준 분이다. 만약에 이런 직장상사를 못 만났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가지고 있는 한국 집 팔아 미국에 집사고 business사고 시작해야 하고 나중에 돌아오고 싶을 때 business는 망가지고 집값은 많이 오르지 않았으면 한국에 돌아올 수 없는 주위에서 많이 일어나는 그런 경우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내 학교선배이다. 그분은 학교 모임에서 알게 된 분인데 굉장히 활동적이고 술을 좋아해서 항상 곁에서 같이 술을 마시곤 하던 선배로 미국 떠나기 전에 인사를 갔다. “ 형 나 미국가 애들 키우고 먹고살려고” IMF여파로 회사가 부도가 나서 한국에서 몇 번이나 직업을 구하려고 노력했으나 부도난 기업의 임원은 뽑지 않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그런 결정을 하였다고 말씀드렸다. 그 형은 미국에서 내가 할 고생이 훤히 보이는지 웬만하면 이곳에 있지 왜 나가냐 하시면서 나를 말리셨다.
그래도 내가 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말씀드렸더니 그 형 왈 “ 너 미국 가는 거 걱정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기에 시베리야에서도 Pants만 입고도 30리는 뛸 수 있는 사람이라서 끌까지 살아남을 것이야” 사람은 누구나 가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가 있으니 그때에는 친한 사람한테 내가 누구인지 물어불 필요가 있다. 그 형처럼 내가 어려울 때 그렇게 보석 같은 말로 나에게 자신감을 넣어주어 나는 그렇게 믿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미국에서 버텼다.
한국에 와서 친한 미국생활을 오래 한 다른 선배한테 인사를 갔다. 미국 생활 중 고생 좀 했다고 이야기했더니 정색을 하면서 말씀하신다. 네가 한 고생은 이곳에서 고생한 사람들에 비해 대단한 것 아니니 나가서 이런 이야기할 때 절대 고생했다고 이야기 말라고---
잘 모르겠지만 나는 집안의 친형은 없지만 집 밖에 형은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