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직장을 잡기로 하였다. 내가 경영하는 식당은 내가 없어도 manager가 알아서 잘하는 편이고 wife도 일을 돕겠다고 해서 낮에 일하는 직장을 잡았다.
먼저 영어 덜 쓰고 편하게 직장 생활하려고 한국사람 공장에서 잠깐 일하였지만 사장은 전형적인 한국 보스스타일이라 미국 생활을 오래 하고 미국에서 공부했던 나는 박봉에 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그리고 업무영역을 분명하지 않은 그곳에서 바로 나오고 말았다. 5시 퇴근 후에도 한국처럼 전화를 해서 업무지시를 하고 눈치를 보게 만드는 그곳에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이 월급 받으면서 이렇게 착취받고 업무시간과 업무영역이 분명하지 않은 곳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미국 직장에서 정상월급 받고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업무영역 내에서 일하는 것이 낫겠다고”
이력서를 내고 연락이 왔다. 주 정부(공사 현장 감독) 회사의 총무/재무부서였다. Interview를 하러 갔더니 흑인 상사가 면접을 봤다. 얼마 전 친구와 끝낸 부동산 개발경험을 건설을 아는 재무관리자로 간주하여 나를 총무와 재무부서 관리자급 자리였는데 고용을 하였다.
직원은 100명가량 되었는데 주로 백인 직원이 많았는데 우리 부서만 흑인이 많았다. 사무실 동료 중 흑인 할머니가 있었는데 남편이 한국근무경험이 있는 퇴역 직업군인이고 그 할머니는 집에 있기가 심심해서 은퇴자금을 벌려고 일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 이름은 Cathy이었는데 마음이 참 따듯하고 직원 들어 고충을 경청해 들는 분이어서 백인 직원들도 인생상담을 하러 많이 왔다. 그중 한 백인은 어린 시절에 가정이 깨진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고등학교를 홀로 졸업하고 이곳에 취직한 그리고 일 년 내내 반바자 반팔로 출근하는 친구의 상담을 아주 엄마처럼 해 주는 것을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았다. 하루는 내가 추위에 떨고 있는 겨울날이었는데 그날도 반바지 반팔을 입고 온 그 친구한테 물어보았다. “ 너는 옷이 없어서 이렇게 입고 오니 아니면 날씨가 너한테는 아직도 춥지 않니” 그 친구왈 자기를 유심히 보라 하면서 자기는 인디언 후손이라 하면서 그 피를 가지고 있어서 별로 추위를 못 느낀다고 하였다. 아아 인디언들은 영화에서 처럼 pants하나 만 걸치고 맨 몸으로 살았었지 하고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그 외롭게 부모의 보살핌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홀로 인생을 개척해 모르는 것이 많은 그 백인친구의 인생상담을 따뜻한 마음으로 돌어 주었던 내 흑인동료가 가끔 생각난다.
Cathy덕분에 흑인역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는데 Cathy집안은 노예해방 이후(남북전쟁으로 북군이 승리한 이후) 열심히 일해서 농지를 받게 되어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백인들이 하루아침에 서류로 뺏아 갔다고 집안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Cathy 주변에는 항상 흑인 동료들이 많았는데 흑인동료들 중에 일부는 친척들이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이 언제 출옥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 보스는 자메이카에서 이민온 흑인이었는데 나보다 15살쯤 어린 친구이었는데 유학 후 자리 잡은 상당히 영리한 친구라 그 친구 한데 Excel Macro사용법을 배웠다. 하지만 상당히 정치적인 인물이라 가까이하기는 싫었지만 자기가 차별받은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동정심이 생기곤 했다 그 보스 왈 “ 하루는 아침에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하고 있는데 백인 경찰이 불심검문해 자기는 주정부 고위공무원이고 자기 집이 가까운데 있다 하여도 자기를 현행범처럼 수갑을 채우고 자기 어린 아들딸이 있는 집으로 가게 해서 그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경험이 있다"(그는 키가 195cm 정도이고 얼굴이 아주 검고 험상스럽게 생기기는 했다)
또 한 번은 나랑 산책을 회사 주변으로 하고 있는데 한 백인노인이 다가와서 나한테 이 흑인이 내 부하냐고 물어 이 사람이 내 보스라고 하니까 거짓말 치지 말라고 하여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백인은 나이가 많고 경험이 있어 보이는 내가 그 흑인의 상사이지 그 흑인이 내 상사라는 말을 믿지 않았고 그 흑인 보스를 경멸스러운 표정과 비하하는 언어(몇 년도에 노예선을 타고 미국에 왔느냐 등등--)로 계속이야기 하여서 참 이 땅에서 백인들 틈에서 흑인으로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회사의 대다수의 간부는 미국군대의 예비역공병장교가 manager아고 현장경험이 풍부한 경험 있는 직원( 퇴임한 중역)이 보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루는 내가 새로 온 Manager한테 인사하러 갔는데 해병대 출신 한 여자 Manager(맥 라이언처럼 키가 작고 작 생긴 금발의 미인)과 인사하였는데 돌 같은 그 손으로 악수를 하고 나서 나는 미국군대는 진짜 남녀차별이 없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여자 예비역 해병대 공병장교 보다 더 거친 손으로 악수한 적이 없다.
인터넷은 가끔 나가는 데 오후에 나가면 기뻐하면서 퇴근할 준비하는 걸 보면서 공무원은 다르기는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 하지만 오후에 나갔던 인터넷이 퇴근 전에 고쳐서 들어오면 실망을 하고 다시 일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동료 중에 한국의 왈패처럼 걸걸한 흑인 여자 동료가 있었는데 내가 나간다고 했더니 자기가 아는 다른 곳을 소개해주어서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3년을 넘기지는 못하였지만 나는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미국직장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