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내 지도교수님

by 원우

처음 유학 가서 만난 내 지도교수는 키가 작고 눈이 이쁜 북구라파 조상(노르웨이계)을 가진 자그마한 여자교수였다. 영화배우로 이야기 하자면 잉그리드 버그만의 얼굴과 맥라이언의 체형을 가지신 분이다. 키는 작았지만 은은한 미소와 푸근한 마음으로 나에게 다가온 분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와 아무것도 모르는 Teaching Assistant로 온 나에게 내가 할 일 그리고 학교 시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불편할까 봐 자기 방 Key까지 주어서 나는 부수적으로 개인 독서실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셨다.


분과의 추억은 많이 있지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분 전공이다. 그분 대학 전공은 현악기이고 유명 Orchestra의 단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악보와 회계와 유사한 것을 발견하고(나는 그 수준이 안되어 잘 모르겠다) 묘미를 느껴 공부를 다시 시작해 박사학위 받고 나서 부임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교수분이었다. 끔 강의 도중 Orchestra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는데 딱딱한 회계강의를 듣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딱딱한 회계가 물렁물렁해지고 머리에 쏙쏙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Teaching assistant중간에 내가 시험점수를 후하게 주니까 상대적으로 그런 면이 있더라도 기준이 뚜렷하고 일관성 있으니까 그대로 밀고 나가라고 전편에서 말씀하신 분이시다. 그분한테 많이 배우고 학교를 떠나는 날 그분이 자기가 아는 회사를 소개해 준다고 하고 신분문제도 해결되니까 이렇게 좋은 이곳 미국에 오래 있으라는 권유는 항상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분과 일화도 하나 있는데 호칭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면서 First Name으로 미국 사람을 부르라고 이야기하는데 한국 유교교육을 철저히 받은 나한테는 초기에 진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Last Name으로 Mrs.ooo라고 불렀다. 방학이 지나고 다음 학기가 시작되어 교수를 지난 학기처럼 그대로 Mrs.ooo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분이 웃으시면서 Last name이 바뀌었으니까 Mrs.$$$로 부르란다. 그때 나는 미국 사람들은 결혼과 이혼이 빈번하고 내 주위에서도 그런 걸 경험했다.


옆방의 독일계 남자교수분이 한 분 계셔서 가끔 차를 같이 마시곤 하였는데 하루는 그 독일계 교수님이 나에게 어디서 왔다가 물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 너희 나라는 아무것도 없는 전쟁 후 상태에서 지금까지 발전해 왔고 그것은 독일과 비슷하고 아마 통일이 되면 다시 한번 도약을 할 것이라는 덕담을 해 주셨다”


그 교수 과목도 수강했는데 첫 시간 질문은(항상 똑같다) San Antonio라는 미국 도시의 1950년대의 인구 중 가장 많은 민족이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Mexico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분은 그것은 독일계라고 정답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유는 2차 대전 이후에 독일군 포로들은 그 도시 근처에 많이 수용했는데 전쟁이 끝나자 독일이 두 나라로 갈리자 많은 젊은이들이 귀국을 포기하고 눌러 않기로 하고 정착한 도시가 그곳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 학교에서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International student advisor이다. 동부 명문에 재학 중인 친구들 이야기로는 졸업 때가 되면 면담할 때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무언의 압력을 주는데 우리 advisor는 취업을 알선해 줄려고 노력하고 취업비자와 유학비자 연장을 하러 국경도시에 가는 학생을 위해서 버스를 대절해 준다고 하여서 나를 감동시킨 적이 있다. 이걸 Southern Hospitality란다. 나는 이것을 “광에서 인심 난다”도 표현하고 싶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북전쟁으로 남부사람들은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나쁜 사람들로 이해할까 봐 그렇지 않다고 항상 이야기한다. 북부사람들이 노예제도를 반대한 이유는 농장이 없어서 그런 것이고 남부 사람들은 노예에 의존하는 농업이 많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제도폐지를 주장하기 어려웠고 남북전쟁도 남부주들이 조합비(연방에 내는)를 내지 않아 연방이 깨지는 것을 막으려고 남북전쟁을 일으킨 것이지 뭐 거창한 노예해방을 위해서 일으킨 것이 아니라고 미국에서 배웠다. 그리고 남부사람들은 시골틱하고 정이 있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아 우리 정서에 더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일반론은 갖지 말기를 – 내가 친하게 지냈던 미국 변호사는 New York에서 태어나 남부에서 대학졸업 후부터 지금까지 남부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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