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Texas의 어느 도시에 정착하기로 하고 가족을 모두 불러들여 다시 이민 시작을 한 것이 2005년 12월이다. 일전에 이야기하였지만 아이들도 미국에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고(이건 우리 아이들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중에도 한국을 미국보다 더 좋아해서 아린시절을 한국에서 보내는 것을 원하는 아이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친척 중 가끔 등장하는 조카뻘 되는 여자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을 잡았지만 한국에 와 일하면서 살고 싶어 했는데 내가 그때 그 걸 못 도와주어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도 재기를 하고 또 먹고살아야 하니까 내가 공부를 해 좀 아는 Texas를 택했다. 만약 그때 한국에서 더 좋은 기회가 있었으면 한국에 계속 있을 수도 있었지만 부도난 회사의 임원으로 몇 번 면접을 보다가 좌절감을 느끼고 미국에 한번 가서 현지탐방을 하고 나서 최종 결정을 하기로 하였다.
15년 만에 다시 간 미국은 떠날 때와 비교해 도시 자체는 더 커지고 복잡해졌지만 한국과 달리 새로운 건물은 주로 공터에 짓고 옛날 건물은 재건축하지 않고(아마 위로 건물을 올려 재건축하는 것보다 땅값도 싸고 옆공터에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이 싸게 먹혀 자은 것 같고 새로 지은 건물도 아주 높은 고층을 올리지 않고 기존의 건물과 비슷한 크기로 올려서 별로 옛날 건물이 새 건물에 끼여서 작게 보이는 경우가 별로 없다) 도로도 그대로이고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여도 기존의 도로를 고쳐 확장하는 게 아니라 새로 도로를 옆에 만들고 옛날 도로는 그대로 있어 차를 빌려 운전하는데 다 아는 길이어서 별로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진짜 반가웠던 것은 내가 떠날 때 Main Time News(한국은 8시 9시가 Main time News지만 미국은 Eastern Time기준 6시 반이나 7시 반이다)의 Anchor Man이 내가 떠나기 전에 하시던 분이 15년 동안 계속하고 계셔서 아주 친숙하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내가 다시 가 살려고 하는 지역에 주요 News시간에 보도하시는 Main Anchor가 그대로이니까 마치 내가 미국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 반갑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고 내가 떠날 때의 미국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약간의 안도감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분은 내가 떠날때 백인 중년 아저씨였는데 할아버지로 변해 있었고 아직도 정정하게 News보도와 Anchor Man을 하고 계셔서 여러 가지 의미 즉 미국은 나이가 들어도 건강이 허락하고 크게 틀리지 않으면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는 운전 면허증을 다시 시험 봐 따고 (그때는 한국 여권으로 운전면허시험을 볼 수 있었고 미국 운전시험은 떨어트리는 시험이 아니라 붙이는 시험이고 필기와 실기가 한국에 비해 어렵지 않다) 자동차는 한국교포가 하는 rent car회사에서 싼 값으로 몇 달을 빌릴 수 있었다. 미국은 자동차가 발이니까 자동차가 생겨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무얼 하면서 먹고살까 하고 기웃기웃 대기 시작했다.
먼저 보이는 것이 주유소였다. 별로 큰 기술도 필요 없고 목이 좋으면 먹고사는 것도 지장이 없을 것 같아 주변분들한테 부탁해 편의점 낀 주유소를 알아 보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부동산한테 연락이 와서 그 걸로 결정하려고 하는 순간 내 Mentor인 미국 변호사 친척 형이 강력하게 말리기 시작했다. 내 계산상 한국에 있는 집과 모든 것을 정리하면 겨우 주유소 하나는 살 것 같아 최근 연속극의 김 부장처럼 한번 질러 보려고 그리고 월급쟁이 좀 탈피해 보려고 계약을 하려는 순간 그 형 왈 “ 네가 이런 일을 해 보지도 않았고 미국도 잘 모르면서 이런 일 하면 십중팔구 실패하니 돈이 적게 드는 작은 것부터 일이나 사업부터 시작하고 경험을 쌓은 뒤에 이런 일에 도전해 봐라” 하고 강력하게 말리셔서 그 형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아 일단 주유소 건은 접기로 하였다.
아마 내가 그때 한국에 있는 집과 가지고 있는 것 모두를 팔아 주유소를 했다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살 집도 그리고 돈도 없어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교육을 시키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빗 좋은 개살구라고(물론 미국에서 주유소로 성공한 분들도 있으니까 그분들은 예외로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부도난 회사로 한번 삐끗하고 이곳 미국에서 한번 더 삐끗하면 미국과 한국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을 텐데 그 형 덕택에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 건을 포기하고 나서는 그 형 제안대로 Consulting 같은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형 이야기로는 이런 일을 하게 되면 현지에서 사업하는 미국교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미국 돌아가는 것도 배우고 무슨 업종이 잘되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 이런 일로 접근해 보라는 권유이었지만 말이 쉽지 어디서 그런 곳을 어디서 찾아 취업을 할지 (이미 내가 새로 무언가 차려서 시작한다는 포기한 상태이니까) 막막했다.
혹자는 이때 한국교회를 열심히 나가 그런 기회를 잡으라고 이야기하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믿는 종교는 보수적이고 그리고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그리고 나도 종교와 사업을 섞고 싶지 않아 홀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편에서 이야기 한 내가 대학원시절에 만난 선배형이 잘 자리 잡고 있는 도시와 학교 친구가 자리 잡고 있는 두 도시를 비교해서 내가 친숙한 Texas 쪽으로 결정했고 집은 일단 학군이 좋은 apt(임대주택)를 구해 들어가고 취업했다.
그때 만약 내가 주유소를 인수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해 보면 나는 100% 실패했을 것이라 생각해서 내 친척형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사업을 해보니 사업은 그것을 해 본 사람이 그리고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성공확률이 높고 그리고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종업원으로 그 사업을 먼저 경험해보고 A부터 Z까지 알고 시작해야 하고 주인이 되고나서 종업원이 문제가 생기면 항상 내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고 나중에 깨달았다. 그때 주위에서 돈만 투자하고 밑에 관리할 사람두면서 사업한 사람들은 모두 망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그 근간은 미국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American Dream(언젠가 준비가 되면 독립해 자기 사업을 하여 성공하는 꿈)을 가지고 있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갖기 어려우며(기회만 있으면 독립하려 하니까) 그래도 모르면 사람을 종업원으로 써야 하지만 항상 종업원이 갑자기 떠날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고 떠나면 다시 종업원을 구하기 쉽지 않고 인건비 부담도 만만치 않아 주인이 항상 종업원대신 일할 수 있는 업종을 찾아야 성공가능성이 올라간다는 면에서 나의 주유소 건은 김 부장처럼 월급쟁이의 무모한 도전이지 않았을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