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우리 회장님(형)

by 원우

언젠가는 내가 존경했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내가 모신 회장님 이야기를 쓸 계획이었지만 순서가 된 것 같아 이번기회에 써볼 예정이다.


내가 그 형을 만난 것은 어느 모임이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IMF(98년) 시기여서 우리나라는 IMF에 벗어나고자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고 있었다.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모델은 우리를 어느 정도 가난에서 벗어나 중진국대열에 올려놓았지만 자본의 불균형적 배분(어느 특정기업에 자원을 몰아주는 것)은 압축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내포한 치명적인 약점 즉 그 기업과 그룹이 무너졌을 때 국가가 감당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아쉬운 것은 그러한 것을 알고 있더라도 그러한 것을 대비하기에는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지지 않아 나는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대기업위주의 성장모델은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적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나 그래도 그때 중소기업을 많이 못 키운 것은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IMF가 발생할 때 외투기업에 몸담고 있었던 나는 내가 원래 계획하였던 유학 후 외투기업에서의 경험을 충분히 하였다고 생각해서 서서히 우리나라 기업(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으로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IMF 터져 당장 한국기업으로 옮기는 것은 치러야 할 대가가 클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그 형을 어느 Seminar장소에서 다른 분 소개로 만날 기회를 가졌었다.


외투기업에서 98년에 Asia Pacific Manager 교육 Program을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에 유치하고 그 Program설계(외부강사 섭외를 포함한 일부 Program은 내가 짤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를 하는 중책을 맡아 일단 장소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를 빼고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설악산 주변에 Program Camp를 설치했다. 내 기억으로 50명가량 되는 교육인원과 외국에서 온 교육진을 수용할 장소를 찾기 위해서 설악산에 있는 Hotel(얼마 전 그곳을 방문했더니 그 Hotel은 같은 위치에 더 큰 Hotel 되어 흐뭇한 감정을 가지고 돌아왔다.)을 섭외하러 갔더니 Hotel 지배인이 반갑게 맞이하고 교육생들을 위해서 따로 토론을 할 수 있는 방도 만들어 주고 하여서 그 장소로 결정하였다. IMF를 맞아 의기소침해 있던 그에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협력(모든 교육을 그 Hotel에서만 하고 그러한 과정을 사진과 기록으로 만들어 Hotel광고로 외국기업이 한국의 한 Hotel에서 교육 program을 개최했다는 광고)을 해 주었다. 1주일의 집체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는 나에게 기념으로 우리나라에서 만든 조그마한 도자기를 선물하여서 지금도 나는 그것을 소중하게 잘 간직하고 있다.


교육 Program을 마치고 나름대로 그 기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자기 위안을 하고 나는 그 회사를 뒤로하기로 하고 그 회장님을 찾아뵙고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타진했다. 그분은 환영한다고 하면서 다만 급여는 내가 외투기업에서 받던 급여의 1/2 그러나 Stock Option을 주어서 나는 그 Manager교육을 끝내자마자 합류했다.


첫날 출근해 저녁에 나를 초대하였는데 회사 앞 돼지 목살과 껍데기를 파는 집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모든 임원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연탄으로 고기를 굽는 둥그런 Table에서 회장님과 다른 임원진과의 상견례는 나의 소중한 추억이다.


이번 한편에 그분의 모든 것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분이 나에게 한 첫 질문은 자기는 주당 100시간가량 일하는데 나는 몇 시간 일할 수 있냐고 물어보아서 나는 80시간은 꺼뜬한데(그렇게 일한 경험이 많아서) 100시간을 일한 경험이 없다고 이야기하였더니 껄껄 웃으면서 그 정도 일하면 충분하다고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남는다.


그때 만난 거의 모든 임원을 그분의 대학교 아니면 대학원 후배로 의료기계의 국산화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공부와 연구를 한 존경스러운 동료들이었다. 회장처럼 1주일에 7일 휴일도 없이 일하고 회사 집 회사 집만 오가는 반복적인 생활을 하고 시간이 아까와 golf도 전혀 안치고 가끔 등산만 다니는 그 순수한 내 동료들은 내가 인생에서 만난 가장 훌륭한 동료였다고 생각한다.


IMF에서 교훈을 얻은 정부가 Venture기업을 진흥시키려고 자본시장을 띄운 것은 아주 잘된 정책이라 생각하며 그 돈으로 많은 회사를 Incubating 할 수 있었고 그리고 몇몇 회사들도 상장까지 되어 그 회사들이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어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 회사는 의료기기만 전문으로 연구 개발 생산하는 회사로 비슷하게 의료 분야에서 신제품과 신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던 많은 기업들에게 Role Model이었고 나도 그런 회사들이 성장하도록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주지하다시피 인구도 작고 시장이 작아 국내에서 성능 좋은 좋은 의료기계를 만들어도 규모의 경제(즉 연구개발비를 뽑을 만큼의 매출을 다다르려면 1억 명 정도의 인구가 필요하다)에 이르지 못하여 기업들은 항상 어려움이 있으며 외국산을 선호하는 의사들(내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방법이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이 국산의료기기를 쓰는 것을 꺼려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국산을 선호하는 의사도 꽤 있다). 우리 회장도 밥 먹을 시간을 아껴가면서 개발한 의료기기를 팔기 위해 우리나라 지방의 어느 오지에 가서 첫 매출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척박한 시장을 걱정하곤 했다.


우리 회사는 상장되고 또 외국인 투자도 받아 몇 년 동안은 현금이 여유가 생겨 해외시장개척에 힘을 쏟아 유렵에 있는 의료기기 제조회사와 몇몇 High Tech의료기기 회사에 투자하고 해외영업망 확충을 위하여 일본, 중국, 미국 그리고 유럽 같은 곳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협소하고 별로 이익도 나지 않았고 그리고 자본시장에서 구한 돈은 국내 Venture회사에 재투자하거나 해외투자를 하여서 금방 회수를 할 수 있는 돈이 아니어서 서서히 모아둔 돈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진짜 열심히 회장과 국내외로 돈을 구하려 다녔지만 실패하고 자회사에 투자한 지분을 팔아 모회사인 우리 회사는 살릴 수 있었지만 회장은 투자한 후배들 회사가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모회사가 그것을 감당하기로 하고 부도를 맞고 말았다.


한 번에 그때 이야기를 다 소개할 수 없으니까 차차 소개하기로 하고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때 Venture에 투자해 돈 번 금융자본가들이 우리나라 산업과 경제를 위해서 무엇을 하였는지 묻고 싶다. 그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판을 깔아준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위하여 평생 연구개발에 몸 바친 사람은 부도를 맞아 결국은 재기를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고 그런 Venture기업에 투자해 돈 번 사람들은 금융자본가로 탈바꿈하고 그 돈으로 golf 연습장, 금융회사 같은 비 생산분야에 투자해 호가호식해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무엇인가 잘 못되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우리나라에 엔비디아나 테슬라 같은 기업이 없는 이유이고 우리가 그런 애국적인 과학자나 공학도를 홀대한 것이 그러한 공학도 기업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앗아가 우리나라 미래를 책임질 공학도들이 의대진학에 몰두하는 작금의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현실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보니 돌아가신 회장도 많이 복권이 된 것 같아 기쁘나 그래도 많은 인재들이 의료기기 개발이 아니라 의사가 되기위해 의대에 지원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있으면 그 마음도 이해는 가나 항상 내 마음은 씁쓸하고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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