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

by 원우

고향에 돌아와 어린 시절 다녔던 길을 다시 가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어린 시절 매일 학교 가려고 걸어갔던 길을 지금은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그 길을 걸어 다닌 한 꼬마의 모습이 가끔 보인다, 60년대 내가 살던 도시는 겉으로는 재건되었지만 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사람들은 그런 슬픈 기억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어린 나에게도 무서운 건물과 무서운 공터가 있어서 항상 그곳을 피해 다녔던 기억이 있다. 6.25 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희생된 곳, 평화로운 가정이 좌익의 길로 간 자식 때문에 페허가 된 집 그리고 그런 분들 때문에 겪은 남겨진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그러한 것을 간직한 곳들은 전쟁이 끝난 지 15년이 지났어도 나는 그런 장소를 무서워서 애써 피해 다녔다. 지금은 그러한 곳들이 개발이라는 단어밑에 깔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곳에 들어선 커다란 건물을 보고 있으면 그 건물주는 그곳의 슬픈 기억을 알고 그곳에 건물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리고 그 시대의 기억은 배고픔이다. 그 시절에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던 우리 식구 모두는 풍족하지 않아 항상 상에 놓여있는 음식이 모자라 3남매가 먼저 먹기 바뻤고 한참 클 나이인 나는 학교 급식으로 나왔던 옥수수빵과 잔치국수 같은 미국구호물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얼마 전 누나와 만날 때 빠른 점심을 먹으려고 나는 아직도 좋아하는 잔치국수를 먹자고 하였더니 누나가 우리 어린 시절 거의 매일 먹었던 잔치국수는 자기는 질려서 지금은 안 먹는다고 하여서 둘이서 웃은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옥수수빵과 잔치국수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내가 돌아온 고향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 있어 익숙한 지역에 갈 때마다 항상 상념에 잠긴다. 300여년 전에 건설된 도시 여러 곳에 남아있는 성곽과 왕이 머물던 곳은 주변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어도 잘 보존되어 있고 그리고 그 도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자부심같이 되어 나처럼 귀향한 사람들에게는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사람들은 추억에 잠길 때 그런 추억이 있는 곳을 찾게 되는데 나는 이러한 추억이 있는 곳들을 우리 고향 사람들이 잘 보존해 주어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조심스럽게 간직한 사투리는 고향사람과 소통할 때 많은 도움을 준다.


학생 때 읽었던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라는 짧은 미국 소설을 보면 지은이가 어린 시절 좁고 작은 고향을 떠나 큰 도시에 가서 공부하고 성공한 후에 자기 고향에 돌아와 보니 자기가 그리워했던 사람들은 없고 고향은 이미 발전되고 변해 있어 평생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가 나이 들어 고향에 돌아와서도 이방인 같은 감정을 느끼는 내용으로 기억되는데 나는 그 작가와 같은 범주에 들지 않아서 행운아라 생각한다.


그러한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에 국민학교 때 이사 와서 사투리 쓴다고 놀림도 참 많이 받았다. 아예 남쪽지역처럼 확실히 발음과 억양이 다르면 구분되지만 나는 아주 미묘한 차이 그러나 어린 나는 모르는 차이를 가지고 서울 사람이 아니라 촌놈이라는 놀림을 많아 받았고 주눅이 많이 들어있었다. 특히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낭독을 시킬까 봐 항상 두려움에 떨었고 지금도 누가 읽는 걸 시키면 남들처럼 부드럽게 읽지 못하는 상흔이 나에게 남아 있다.


그래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고학년에 가서는 그래도 새로운 환경을 적응하여야 하니까 서울사람처럼 말할 수 있어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그때 나의 서울생활적응을 위해서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교정해 준 고마운 친구를 나는 가지고 있다. 서울 토박이인 그 친구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사투리를 쓰는 그리고 서울 친구들이 금방 알아채는 미세한 표현과 말투를 고칠 수 있게 많이 도와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빠르게 서울사람으로 변해 갔다.


지금도 자주 만나는 다른 국민학교 동창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내가 서울사람으로 알았다고 이야기하면 나의 어린 시절 서울사람이 되도록 기울였던 노력이 생각나 우습고 씁쓸한 감정이 들곤 한다.


어린 시절 서울로 올라와 힘든 시절을 보내고 나서 서울사람이 된 나는 서울에서 오랜 시간 생활을 하면서 주변에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고 사투리를 전혀 고치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한 생각도 든다.


서울에 살면서 나는 사대부집을 잘 보존해 가정집으로 쓰고 있는 서울토박이집도 많이 놀러 가 보았고 타지에서 서울로 올라와 살고 있는 나 같은 지방출신 서울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일단 서울에 살려면 서울 표준말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서울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다른 지역출신으로 서울에 자리 잡은 사람들과 지켜야 할 불문율 같은 약속이라 생각한다.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서울말을 쓰고 집에 가서는 고향말 쓰고 그러한 것은 우리 같은 타지인을 받아준 서울사람들의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고 예의라 생각한다. 하물며 북한도 사투리가 강하지만 평양말을 표준어로 지정해서 학교에서 가르친다 하는데----


그래도 일생을 살면서 고치기 어려운 것이 사투리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내 사투리로 내 직작동료가 가끔 내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이야기하면 사투리는 일생일대의 숙제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만난 분 중 한마디만 듣고 그분이 나랑 같은 고향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이야기하니까 그분이 놀라면서 반갑다는 인사를 받은 기억이 있다. 미묘한 차이지만 그걸 알아듣는 나와 그런 말투를 미국에서 까지 가져가 간직하고 있는 그 여자분을 볼 때 사투리는 나의 영원한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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