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여자 변호사

by 원우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취업한 곳은 한인이 운영하는 업체였다. 이곳에서 취업비자를 신청해 이민국에서 허가받고 여권에 그 취업비자 stamp(모든 비자는 미국외 지역 즉 외국에서 받아가지고 들어와야 한다)를 받기 위해 국경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영사관에서 받기로 하고 차를 몰아 아침 일찍 국경 지역에 도착하였다. 외국에 있는 영사관에 도착하니 한국과 같이 영사관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영사관 문 밖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 겨우 영사를 만나 미국에서 취업비자를 받고 내 한국여권에 visa stamp를 받기를 원한다고 이야기하였더니 이민국에서 보내준 서류에 문제가 있다고 그 자리에서 거부해 버렸다. 이민국에서 허가 내 준 서류를 영사(미국백인)가 거부하다니 – 잠시 멍하게 있다가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국경지역으로 향했다.


접경지역 검문소에서 2시간을 잡혀 있다가 취업서류가 유효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 겨우 나를 풀어주었다. 다시 일하던 곳으로 돌아와 친척 형 변호사(내 mentor였으나 얼마 전 운전 중 심장 stroke가 와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잠시 갓길에 정차하였는데 회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셨다)한테 문의를 하였다.


“ 이민국에서 허가 준 서류를 왜 영사관에서 부인하는 거야” 하고 물어보았더니 그런 일들은 종종 있는 일이라 하면서 그래서 자기는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하였지만 그런 문제가 생길 때 해결해 줄 수 없어 이민법은 안 한다고 하면서 Jewish 변호사를 소개해 주었다.


Jewish 변호사 사무실에서 Mexico계통의 직원 Agent(지금 생각엔 변호사가 아닌 사무장 같다)와 만나 국경도시에 비행기를 타고 자기와 같이 가서 받자고 하면서 Fee로는 자기 수수료, 비행기값, hotel비, 차 rent비등 몇천 불을 청구하였다. 지금 기억에 내 한 달 치 월급쯤 되는 것 같다.


비행기 타고 국경도시에 도착해 하루를 묵고 차를 rent 해 국경을 건너(미국 국경을 나가는 데는 검사가 없다) 아직 일찍 영사관에 도착해 줄 서지 않고 직접 영사관 안으로 들어가 바로 영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Agent는 영사관밖에 경찰과 영사관 안의 직원과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니 오랜 기간 동안 알고 지내온 관계처럼 보였다.


담당은 똑같은 백인 영사이었는데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내 서류를 제출하면서 내가 일하는 곳은 합법적인 곳이고 나도 대학원을 졸업한 취업비자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내 기억에 5분도 안 걸렸던 같다 그 자리에서 내 한국여권에 stamp를 찍어 주었다.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대관업무를 할 때는 변호사를 끼고 하여야 하는구나 덕분에 나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취업 visa를 받으면 즉각 영주권수속에 들어간다. 신문광고도 내고 서류도 제출하고 하여 영주권 관련 모든 서류를 제출하고 최종 영주권 승인(제출 후 승인 때까지 대기기간이 길다)과 interview만 남았을 때 나는 심한 향수병에 걸려 고용주에 백배사죄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주권 승인이 떨어져 한국 소재 미국 대사관에서 interview 하고 미국으로 입국하라는 연락을 받았다(Interview통과하면 영주권 받고 미국으로 출국하여야 한다). 오랜 기간 고민 끝에 나는 미국에 가기 않기로 하였다. 결혼할 상대도 한국에서 구했고 한국 직장 Pay가 미국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고 부모님이 연로해지는 것 같고 내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 나는 한국에 남기로 하였다. 이미 승인된 영주권은 유효할 것이라는 착각을 믿고---


15년이 흘러 IMF뒤에 내가 다니던 회사도 오래를 바티지 못하고 부도가 나 버리고 말았다. 두 아이도 외국에서 공부하기를 원하고 나도 한국에서 사업하는 게 위험이 크다 판단해 미국을 사전답사해 보았고 고민 끝에 B도시에 정착하기로 정했다.


얼마뒤 다시 영주권을 신청하기 위해 주변 변호사한테 문의하니 과거에 받았던 영주권은 이미 무효가 되었고 현 직장에서 다시 신청하면 3순위라 신청 후 3-5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준비를 시킬까 하다가 주변 분들한테 물어물어 현지 변호사를 만나보기로 했다.


사무실은 별로 크지 않았고(직원이 2명의 변호사 포함 4명 정도) 막 법대를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흑인 여자 변호사였는데 지난번 이야기한 변호사와는 180도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15년 일하는 동안 고위경영진으로 오래 근무하였고 이경우에는 2 순위에 해당해 대기기간 없이 신청 후 바로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여자 변호사를 물 끄러니 쳐다보고 몇 번을 되물었고 똑같은 답변을 해서 한번 이 흑인 여자 변호사와 일을 해 보기로 하고 선수금으로 수수료의 절반을 먼저 주었다.


신청한 지 2년도 안되어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영주권이 나왔으니 찾아가라고 그리고 대기자가 많아 처리가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


15년 전에 경험한 것이 미국을 알게 하고 그 소중한 경험으로 변호사를 보는 눈이 생기고 그리고 그것은 내가 다시 자리 잡는데 결정적 도움이 된 것 같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모든 경험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것은 미국을 알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언젠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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