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엄마보다 새엄마를 더 많이 사랑한 카사노바
카사노바의 생존심리학
by 카사노바의 생존 심리학 Mar 20. 2026
이제 R이 이러한 꿈을 꾸게 된 원인을 그의 성장 과정을 통해 살펴보자. R은 비록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어머니가 바뀌는 커다란 상실을 경험했다. 사춘기라는 민감한 시기에 겪은 이러한 변화는, R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와 혼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R의 새엄마는 그를 자신의 친아들처럼 극진히 보살폈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서적·현실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R의 말에 따르면, 이 새엄마는 어머니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동시에 해낸 존재였다. 그 결과 R은 경기도에 있는 비교적 좋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안정된 청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새엄마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 속에서 R은 자신의 정신 안에 비교적 건강한 초자아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R은 자신을 떠난 친엄마와는 달리, 젊고 아름다우며 교양까지 갖춘 새엄마를 친엄마 이상으로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새엄마와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R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떠난 친엄마에 대한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바로 이러한 감정이 R의 꿈속 탈의실 장면에서 친엄마가 등장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꿈속에서 친엄마와 새엄마의 모습이 갑작스럽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나타났을까? 이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친엄마가 아닌 새엄마와 가까워졌다는 데서 비롯된 죄책감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을 끝까지 보살펴준 새엄마가 차라리 자신의 친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무의식적인 바람이다. 이처럼 꿈은 우리의 무의식을 매우 기발하고도 절묘한 이미지로 표현해 낸다.
꿈속에는 R의 초자아 역시 분명하게 등장한다. 탈의실에서 마주친 새엄마와 친엄마의 모습은 단순한 인물의 재현이 아니라, R의 내면에 자리 잡은 초자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꿈속의 초자아는 R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성이 있는데도 계속 한눈을 파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야.”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당시 R이 동시에 만나던 두 명의 여자 친구의 성격이 각각 그의 새엄마와 친엄마를 닮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대목은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 속 아니마(anima) 개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뒤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의식보다 무의식의 영향을 훨씬 더 크게 받으며 살아간다. 어쩌면 R이 카사노바가 된 근본적인 이유 역시,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 새겨진 두 명의 어머니라는 여성상이 현재의 연애 관계에 그대로 투영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R의 꿈은 바로 그 무의식의 작동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