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는 두 개 이상의 아니마(anima)를 가진다
카사노바의 생존심리학
by 카사노바의 생존 심리학 Mar 22. 2026
이제 카사노바의 신비로운 아니마를 살펴보자.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만나는 이성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다. 따라서 우리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통해 형성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성인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자신의 부모와 비슷한 성격이나 외모를 지닌 이성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는 굳이 심리학적인 해석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결혼을 원하는 남녀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느꼈던 자상함과 안정감을 성인이 되어서도 다시 경험하고 싶어 할 것이다. 문제는 가정 폭력이나 아동 방치 등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성장한 자녀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학대했던 부모와 비슷한 성향의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융이 말한 일종의 동시성의 원리(synchronicity)로 설명될 수 있는, 다소 기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동시성의 원리란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두 사건이 의미심장하게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동시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문제가 많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도 다시 문제가 많은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이유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동시성의 원리에 의해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동시성 현상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자세히 다루겠다).
물론 카사노바 역시 자신의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된, 그만의 독특한 아니마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만나는 여러 여성 또한 무의식적으로 그의 아니마와 유사한 경우가 많다. 다만 이는 필자가 직접 만나 본 소수의 카사노바들을 관찰한 결과에 근거한 것이며,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그렇다면 이 장의 주인공인 R의 아니마는 어떠한 모습일까? R 역시 다른 남성들처럼 친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아니마를 형성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불륜과 전 부인을 무시하는 태도로 인해 R은 친어머니에 대해 다소 이중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내포한 아니마를 형성하게 된다. R이 친어머니를 통해 형성한 아니마는 자녀와 배우자에게 헌신적인 현모양처이지만, 교양 수준이 낮고 나이가 든 여성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R은 젊고 교양 있으며 세련된 새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이 새어머니의 아니마에는 친어머니가 지녔던 현모양처의 이미지에 더해 젊음과 교양, 그리고 미모까지 결합된다. 기존의 친어머니 아니마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R에게 이러한 새어머니의 신선한 아니마는 분명 성장 과정에서 긍정적인 자극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R이 계속해서 친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의 아니마 중 일부는 여전히 친어머니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R의 무의식 속에는 특이하게도 두 개의 아니마가 공존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R은 단 한 명의 여성과의 관계에서는 심리적인 안정과 만족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