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여성(남성)이 있다?

카사노바의 생존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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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이성,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는 태어날 때 처음으로 접하는 이성인 부모를 통해 자연스럽게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형성하게 된다. 여기서 아니마(anima)는 남성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여성적 이미지이며, 아니무스(animus)는 여성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남성적 이미지를 뜻한다. 처음 이 개념을 접하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내 안에 또 다른 이성이 존재한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념을 순수한 심리학적 은유로만 보지 않고, 과학적, 특히 내분비학적 관점에서 함께 바라보면 훨씬 이해가 쉬워진다. 우리의 직관과 달리, 인간의 몸에서는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이 동시에 분비된다. 단지 남성과 여성에 따라 그 분비 비율이 다를 뿐이다. 실제로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을 보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 뚜렷한 성별 구분이 어려운 중성적인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면서 호르몬의 영향이 본격화되면, 신체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사춘기 이전까지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중성적인 상태를 거친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이 유전적·생물학적으로 다른 성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익숙해질 충분한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양성적인 특징을 지닌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자료도 존재한다. 생물학자 알프레드 킨제이(Alfred Kinsey, 1894~1956)가 발표한 이른바 킨제이 보고서가 그것이다. 우리는 흔히 남성성과 여성성을 명확히 구분되는 이분법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킨제이의 연구에 따르면, 성적으로 완전히 이성애적이거나 완전히 동성애적인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성적 성향은 하나의 연속적인 스펙트럼 위에 놓여 있으며, 그 스펙트럼에서 남성성과 여성성 중 어느 쪽에 상대적으로 더 가까운가에 따라 성적 지향이 구분될 뿐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양성적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유난히 긴 유년기를 거치고, 사춘기 이후에도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이 동시에 지속적으로 분비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생물학적 사실을 이해한다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개념이 단지 추상적이거나 신비한 심리 용어가 아니라는 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성적 파트너나 배우자로 자신과 반대되는 이성을 선택한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3% 정도가 동성애자로 분류되며(2023년 입소스 설문 조사 참조), 이는 여전히 소수에 해당한다. 융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이성 선택의 경향을, 내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외부 대상에서 찾으려는 자연스러운 심리적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욕구는 결혼 적령기의 젊은 남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연령대의 남성과 여성은 삶을 함께할 파트너나 배우자를 통해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고자 한다. 특히 자신의 무의식 속 아니마나 아니무스의 이미지와 비교적 잘 부합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 우리는 가장 깊은 친밀감과 안정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사랑과 관계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무의식의 구조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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