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본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아니마와 아니무스 역시 타인을 향해 투사가 일어난다. 다만 그림자가 주로 동성 간의 관계에서 투사되는 반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주로 이성 간의 관계에서 투사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만약 자신의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와 매우 유사한 이성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심리적으로 강렬한 황홀감을 경험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운명의 짝을 만났다’는 느낌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서로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모든 연령대의 성인 남녀가 만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니마나 아니무스를 상대 이성에게 투사하게 된다. 이는 의식적인 노력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매우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심리 현상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남성과 여성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융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나이나 개인적 상황과 무관하게 이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자신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투사하게 된다. 만약 두 사람의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룬다면, 직장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화기애애해지고 협력적인 관계 속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사소한 갈등이 반복되어 서로의 직장생활이 힘들어질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투사는 연인이나 직장 동료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이러한 투사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부모 역시 무의식 속에 각자 고유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원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과 반대 성별의 자녀가, 자신의 아니마나 아니무스 이미지와 크게 다를 경우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예컨대 아버지의 아니마가 차분하고 헌신적인 현모양처의 이미지인데, 실제 딸의 성향이 활달하고 거침없는 말괄량이라면, 아버지와 딸 사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긴장과 불화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이러한 남녀 사이의 아니마와 아니무스 투사를 인류 심리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프로이트가 발견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상으로 중요한 통찰이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살펴본 그림자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남녀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투사를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의 연인과 배우자, 나아가 자녀의 심리까지도 훨씬 깊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