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소식을 전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급하게 올 것 없어. 그리고 검은 양복 좋은 걸로 입고 와."
부고 소식을 듣고 이틀이 지나서야 장례식장에 갔다.
오랜만에 입은 양복과 넥타이가 목을 조여 왔다.
빈소는 조용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가족들과 잠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아버지 옆에 앉았다.
아버지는 동생과 나란히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고모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재작년에 뵈었지만
연세가 많으신 탓인지 날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결혼을 앞두고 억지로 찾아온 거니까.
날 기억해 내려 무슨 말인지 중얼거리시는 동안
나대로 할머니를 기억해 보려 했다.
마지막으로 찾아뵌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
내 가장 오래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누군가의 집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지켜봤다기보다 난 그저 거실에 놓여 있었고
두 분의 이야기가 오가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는 표현이 맞겠다.
할머니는 안방에 있었고 엄마는 안방 문 옆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너무 어린 탓에 어떤 이야기인지도 모른 채, 계속 딴청을 피웠다.
어머니는 조용히 흐느끼며 힘없는 몇 마디를 할 뿐이었다.
어린 마음에 두 사람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돌아 앉아
그렇게 어머니의 흐느낌만 간간히 느꼈다.
계단도 손으로 짚어야 오를 수 있었던 작은 나에게
이런 감정은 격렬하게 타오르지도 차갑게 꺼지지도 않은 채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늘 그곳에 있었다.
다행히도, 슬픔은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환원됐으나
할머니에 대한 반감은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이후로 할머니는 한 번 우리 집에 찾아오신 적이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 누나는 주방에서 분주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아들이에요, 내가 알아서 잘 키우고 있어요!!"
어머니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댁으로 가셨다.
그리고 빈소에서 할머니와 마지막 만남이다.
당신께서도 분명 최선을 다했을 거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혼자서 육 남매를 키워야 했으니까.
단지, 그 최선에 우리 가족이 없었을 뿐이다.
난 원망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으니까.
깨끗한 삼베를 바라보는 몇 사람의 눈인사가
당신의 마지막이다.
이제 빈소에는 아무도 없다.
조문객의 식사 자리는 식탁보로 위장한 하얀 비닐에 씌어져
효과적으로 포장되어 쓰레기통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