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상 2

피로의 침묵

by 허튼이

책 한 권을 챙겨 들고 새로 생긴 카페로 갔다.

카페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매장에 손님이 하나도 없어

조용히 책 읽기 좋은 카페라 여겨 다시 한번 오기를 다짐했다.

짙은 갈색의 합판으로 맞춤제작한 수납장,

원목으로 된 테이블과 의자도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크기의 화분이 빼곡하게 들어선 것도.


카페 문을 열자 카운터 바로 앞 테이블에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는 무엇인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묻어 나왔다.

무기력과 무료함, 퀭한 눈에는 지친 기색이 내비쳤다.

품에는 아이가 잠들어 있었고, 남자는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남자의 눈빛에 당황해 처음에는 몰랐으나, 자리에 앉고 보니

그 남자의 맞은편에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아마도 부인이겠지.

남자는 조용히 아이의 등을 두드리고, 여자는 음료를 홀짝였다.


책을 읽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문득

'저 사람들 한 마디도 안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여전히 남자는 조용히 아이의 등을 두드리고, 여자는 음료를 홀짝이고 있었다.

사이가 나빠 보인다거나 불편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육아에 지쳤으리라.

육아에 지친 아내를 달래려 주변 카페를 검색하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아무 말 없이 커피와 쿠키를 즐기는 부인을 마주 보며

그렇게 남자는 앉아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 동안의 침묵이라니.

나라면 어땠을까, 긴 침묵을 견딜 수 있었을까?

읽던 책을 덮고 자뭇 진지한 표정을 지어내며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는 척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어본다.

내가 한 시간이나 아무 말 없다면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편했을까?

아니면 서로 아무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그런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그럼 사람이 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람은 있다.

하지만, 한 시간이라니.

아마도 긴 침묵이 찾아들기 전 내 할 일을 찾거나

무슨 이야기라도 먼저 꺼냈으리라.


당연하게도 침묵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침묵은 단절이 아니다. 침묵은 쉼이고 여백이다.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듯 침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물론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상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난 당신의 놀이공원은 아니니까.


문득 저 부부의 모습이 붉어지는 빛과

고소한 커피 향과 쟁반 위의 쿠키 부스럼과

축 늘어진 아이의 등과 어울려

일요일 오후의 나른함이란 이런 것이라 말하는 기분이다.

나른한 침묵이란 이토록 편안하고 아늑한 것이라.


나의 침묵은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뒤 찾아드는

피로감의 침묵이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혹은 상대가 느낀다고 생각하는 불편함은)

다음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긴 줄에 서서

남들 비명소리 나 들으며 내 차례는 언제일지,

저 기구가 내게 얼마큼의 즐거움을 제공할지,

그저 즐거움이란 밖에서 주입되는 것이 전부인

수동적인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침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탓하거나, 자신을 비난하지는 않겠다.

난 그저 카페 한편에 앉아있는 한 사람일 뿐이며

내가 제공하는 즐거움 혹은 피로한 침묵은

상대의 삶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궁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