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는 아이를 보며
카페에 앉아 책이나 읽으며 궁상이나 떨어볼까 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집중이 되질 않는다.
갑작스레 내 옆을 지나치며 수줍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어린아이의 미소에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오랜 시간이나 잊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
그때는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을까. 하루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었고
조금씩 흐르는 구름과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에 시선을 빼앗겨
그렇게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어도 내일이 불안하거나 하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
그렇다. 난 카페에 앉아 치즈케이크 한 스푼 조심스레 떼어내
그 달달함 한 톨이라도 놓치지 않고자 얇은 입술로 있는 힘껏 티스푼을 훑으며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 회사에는 몇 년 동안이나 다닐 수 있을까, 정년까지는 몇 년이나 남았나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을까?
내가 갖고 있는 것, 내가 잃은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온갖 잡념이 머리에 떠올라 결국 연필을 내려놓고 멍하니 바깥 풍경만 바라보았다.
창틀 실리콘 위에 쌓인 먼지에서 왠지 고소한 향이 나는 것 같다.
아마도 치즈케이크 때문이겠다. 한 스푼 더 떠먹었다. 너무 달다. 아메리카노도 한 모금 마신다.
아메리카노를 먼저 먹고 케이크를 먹는 게 더 나았을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고 딱 맞는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연필을 쥐고 짧은 손가락 열심히 돌린다.
이 연필은 밸런스가 좋지 않네.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이며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좋아하는 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그것마저 확신할 수 없다.
취미라 부르며 해왔던 것들, 좋아한다고 해 온 것들
정말 좋아서 한 것일까 아니며 그것을 좋아한다고 믿는 나 자신을 좋아한 것일까
의심이 든다.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는 이 안타까운 상태라니!
아니면, 확신이란 건 환상일 뿐이고 실존하는 것이라고는 미뢰 사이에 늘러 붙어
나른하게 날 녹이는 치즈케이크뿐일까?
그저 이 자리에 앉은 채 굳어버릴 마법의 케이크는 없을까.
아니 앉은 채보다는 바닥에 누운 채가 낫겠다.
이렇게 흐르는 대로, 저항하지 않고 지금 이 모습 이대로 가라앉아
오늘 하루의 사소함만을 간직한 채 잠들고 싶다.
그런 삶에 만족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는 일도 날 지치게만 한다.
이대로 모든 내 열정과 노력과 마음 한구석 자리 잡은 '저 너머에는 무언가 있다.'라는
마음을 놓아 버리고
누구의 눈도 마주할 필요 없이, 누군가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 없이 가만히 누워 있으면
점점 가라앉아, 저기 가장 아래 닿을 때서야 만족할까?
사람답게 산다는 건 넘어지고 쓰러질 수 있어도 앞으로 달려갈 수 없어도
힘겨운 한 걸음을 내딛고, 지쳐 쓰러져 기어서라도, 조금이라도 좋으니
앞으로 나아가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내 믿음이 내 행동의 원동력이라 믿고
스스로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이런 처절한 구호를 되뇌며 살았나 보다.
하지만 구호 따위 뭐가 필요하냐는 듯 방금 지나친 아이의 그 미소 말이다.
그래, 궁상보다는 역시 미소가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