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행복ㅡ김신지 에세이 <상강>중
상강(霜降)은 가을의 마지막 절기,
마치 계절이 기차를 타고 마지막 역에 도착한 듯한 순간이다.
이슬이 서리로 바뀌고,
나무는 잎을 떨구며 뿌리로 영양을 보내고,
농부들은 바쁜 손길을 멈추고 겨울 채비를 한다.
『제철 행복』에서 김신지 작가는 말한다.
떨어지는 것은 끝이 아니다.
떨어진 그 자리에는 이미
다음 계절로 이어지는
생명의 고리가 준비되어 있다.
예전엔 단풍을 보면 쓸쓸했다.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습들도
곧 다 지고, 다 사라질 것을 알기에
애써 그 순간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떨어짐은 슬픔이 아니다.
나무는 잎을 잃으며 뿌리로 더 깊이 내려가고,
땅속에서는 새싹이 보이지 않게 자라고 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리하고, 내려놓고, 마무리하는 시간에야
비로소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도 생긴다.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때 참 친했던 친구.
10월 23일, 상강에 태어난 친구다.
오십이 넘은 지금은 멀리 살아 가끔씩만 얼굴을 본다.
얼마 전, 그 친구에게 『제철 행복』 책을 선물 받았다.
그 책이 나를 모닝필사로 이끌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곧 7월 말에 만나기로 했다.
생각만 해도 마음 한쪽이 따뜻해진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때 받은 편지 중 잊히지 않는 건
친구가 빨간색 볼펜으로 적어 내려간 편지였다.
빨간색은 보통 사용하지 않는 색이었지만,
그 편지에서는 어쩐지 너무 잘 어울렸다.
친구의 말투, 글씨, 마음까지
모두 빨간색으로 빛나던 그 편지.
가끔 그 편지를 떠올리면,
그 시절 우리 둘의 웃음소리,
교실 창가에서 바람에 날리던 교복 치마 자락,
하굣길의 노을 같은 것들이 함께 떠오른다.
잎이 다 떨어져도 사라지지 않는 건
그때의 따뜻함, 그 마음이다.
그리고 나는 이 문장을 따라 쓴다.
“나무는 잎을 잃으며 뿌리로 더 깊이 내려가고,
사람은 마음을 비워야
새로운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떨어짐은 끝이 아니었다.
멀어진 만큼 더 선명해진 마음,
떨어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던 마음이
조용히 내 안에서 새싹처럼 고개를 든다.
나는 상강의 낙엽을 생각하며
다음 계절로 이어질 내 마음의 씨앗을 떠올린다.
아쉬움과 애틋함이 뒤섞인 그 자리에서
조용히 묻는다.
당신 안에도 지금,
작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한
어떤 마음이 있지 않나요?
[제철행복]은 나에게 계절을 건넸고
나는 그 계절안에서 나를 만났다.
문장을 따라 쓰며 나는 계절의 마음 그리고
내 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내 안의 작은 사계절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