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마음을 알아차린 날

by 봄날의꽃잎
2008년 둘째모습

둘째가 6학년이던 어느 날, 공개수업에 갔다. 교실 안은 부모들로 가득했고, 아이들도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날 활동은 조금 특별했다. 아이와 부모가 서로의 마음을 적어보는 시간이었다.

엄마 입장에서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 아이가 듣고 싶어할 말”을 적고, 아이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을 적는 것이었다.


나는 종이를 받아 들고 잠시 고민하다가, 게임을 좋아하는 둘째를 떠올렸다.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말은, 아마도 “엄마, 저 게임 시간 늘려주세요.”겠지.’ 나는 웃으며 그렇게 적었다. 그리고 “아이가 듣고 싶어하는 말”에는 “게임 실컷 해라”라고 썼다.

‘역시 나는 우리 아이를 잘 안다.’ 속으로 은근히 뿌듯했다. 아이 마음을 꿰뚫어본 듯해 혼자 대견하기도 했다.


잠시 후, 선생님이 학부모 몇 분을 뽑아 아이와 함께 발표해보자고 했다. 나는 두 번째로 지목되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이미 이름이 불린 이상 나가야 했다. 교실 앞에 서서 내가 쓴 내용을 읽었다. 부모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따라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둘째 차례였다. 아이가 자신이 쓴 종이를 들고 읽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엄마, 저 100점 받았어요.”

그 순간, 내 몸이 얼어붙었다.

이어서 아이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은… 너도 공부 잘하는구나.”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그 자리에서 나는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덥석 끌어안으며 “우리 ○○가 많이 속상했구나.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늘 첫째가 기준이었다. 큰아이가 처음 100점을 받아올 때, 처음 상장을 받아올 때, 처음 무엇인가를 해낼 때마다 부모로서 기쁨은 배가 되었다. 처음 겪는 일이니 기념사진도 찍고, 박수도 크게 쳐주고, 감동도 오래 갔다. 그런데 둘째는 달랐다. 이미 한 번 본 장면이라 놀라움이 덜했고, 기쁨은 있었지만 표현이 작았다.

“그래, 잘했어.”

그 정도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둘째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형 못지않게 영특했는데도, 그저 스쳐 지나가듯 반응해버린 것이다.


사주적으로도 둘째는 금(金)과 불(火) 기운이 어우러진 아이였다. 금(金)은 성실함과 책임감을, 불(火) 기운은 성취와 인정 욕구를 키운다. 다시 말해, 둘째는 “인정받을 때 더욱 힘이 나는 기질”이었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그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형과 비교해 “당연히 잘하겠지” 하고 넘긴 순간들 속에서, 아이의 기질은 존중받지 못한 채 숨어 있었던 것이다.


둘째의 종이에 적힌 그 짧은 문장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아이의 기질에서 흘러나온 간절한 신호였다. “나도 칭찬받고 싶어. 나도 인정받고 싶어.” 그 메시지가 내 가슴을 울렸다. 나는 그날 교실 앞에서 온몸으로 반성했다.


그 이후 나는 달라지려 노력했다.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따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큰아들에게도, 둘째에게도, 셋째에게도 개인적인 대화를 챙겼다.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했다.

“엄마는 널 가장 믿어.”

큰아이는 “엄마는 나를 가장 믿는구나” 하고, 둘째도 그렇게 믿고, 셋째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 아이 모두 각자 자신이 엄마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길 바랐다. 그 착각이야말로 아이를 단단하게 세워주는 힘이 되리라 믿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넌 잘하고 있어”라는 확신이었다.

형과 비교하지 않고, 동생과 나누지 않고, 그 아이 하나만 바라보며 해주는 인정이었다. 둘째의 사주 기질이 보여주듯, 칭찬과 인정은 아이를 자라게 하는 최고의 양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눈물이 쏟아지던 내 모습, 아이를 끌어안고 “미안하다” 속삭이던 순간.

그때의 울컥함은 여전히 내 가슴에 살아 있다.


그리고 오늘도 아이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널 가장 믿어.”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엄마에게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라간다. 나는 그 믿음이 아이를 키우는 가장 든든한 토양이라고 믿는다.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무대에서 박수를 받고 싶어한다.

나는 오늘도 그 무대의 가장 큰 관객이 되어, 세 아이 각자에게 나만의 박수를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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