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는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기적 같은 아이였다.
임신 중독증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는 높은 기형아 수치와 조기 출산 가능성을 말했다. 결국 31주에 아이를 낳았다. 작고 연약한 몸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막내를 바라보며, 나는 그저 기도했다.
“살아만 다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형들보다 훨씬 늦게 찾아온 늦둥이, 위태롭게 세상에 나온 아이였기에 나는 막내를 조금 더 자유롭게 키웠다. 공부나 성취보다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게만 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였다.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머님, ○○가 조금 특이한 것 같아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걸까.
선생님의 설명은 이랬다. 보통 아이들은 월요일 아침 교실에 들어오면 친구들과 반갑게 어울리며 놀기 시작한다. 그런데 우리 막내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화분을 향해 다가가 이렇게 인사했다고 한다.
“안녕, 잘 지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웃음이 났다.
눈앞에 그려지는 막내의 모습이 귀엽고 기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켠에서 화가 치밀었다.
내게는 감성적이고 사랑스러운 행동이, 누군가의 눈에는 ‘특이하다’는 낙인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내 아이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못내 불편하고 속상했다.
시간은 흘러, 막내는 어느덧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사춘기 소년답게 투덜대기도 하지만, 시를 쓰는 걸 좋아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시간을 즐긴다. 형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 속에서 자라온 셋째를 볼 때면, 나는 종종 그 어린 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교실 한구석에서 화분을 향해 “안녕” 하고 인사하던 그 모습 말이다.
사주적으로 보아도 셋째는 물(水)의 기운이 아주 강하다.
물은 고정된 틀보다 흐름을 따라가고, 사람보다는 사물이나 자연과 교감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식물이나 장난감과 이야기를 나누는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물의 기운은 또한 감성과 상상력이 풍부해 시를 쓰고,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표현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남들 눈에는 조금 느슨해 보이고 특이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깊고 부드러운 흐름이 숨어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셋째를 키우면서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다르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름은 곧 특별함이다.”
막내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평범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누구보다 특별한 색깔을 가진 아이였다.
건강하기만을 바라던 그 마음 그대로, 아이가 가진 빛깔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응원임을 깨달았다.
지금도 막내는 가끔 혼자 중얼거리듯 글을 쓰고, 종종 사물을 향해 말을 건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다시 다짐한다.
“그래, 이 아이는 물처럼 흐르는 기질을 가진 아이야.
특별함을 잃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게 하자.”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리듬으로 살아간다.
첫째가 불처럼 순간 몰입형이라면, 둘째는 금처럼 계획적이고 성실하다.
그리고 셋째는 물처럼 부드럽고 감성적이다.
나는 이제 그 다름을 부족함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다름 덕분에 우리 가족은 더 풍성하다.
교실에서 식물에게 “안녕”을 건네던 그 아이는,
지금도 세상에 자신만의 언어를 건네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에서 박수를 보낸다.
“잘하고 있어. 너는 너답게, 아주 잘 자라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