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며 다시 살아나다

by 봄날의꽃잎


내향인은 글을 통해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연다.


책 속 문장에서 위로받는 것도 좋지만, 어떤 날은 스스로 글을 써야 마음이 가라앉는다.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과 감정이 오래 쌓이면, 마치 방 안에 먼지가 가득한 것처럼 답답해진다. 그때 연필을 들거나 노트북 앞에 앉아 단어를 옮기기 시작하면, 조금씩 숨통이 트인다.


글을 쓴다는 건 마음속에 고여 있던 물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일과 같다. 차마 말로는 꺼내지 못했던 생각들도, 글로는 담담하게 적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직접 말하면 부담스럽고 때론 오해가 될 수도 있지만, 글은 나를 다그치지 않고 묵묵히 받아준다. 그래서 내향적인 나에게 글쓰기는 곧 쉼이자 해방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예전부터 글로 마음을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자주 썼다. 말로는 차마 다 하지 못했던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편지에 담으면 훨씬 솔직해졌다. 일기도 꾸준히 썼는데, 돌아보면 늘 반성문 같았다. 그날의 잘못을 기록하고, 내일은 더 잘해야지 다짐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말보다 글이 더 편했고, 글을 쓰는 순간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침마다 필사를 하는 것도 내 일상의 중요한 의식이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책 속 문장을 손으로 옮겨 적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불안했던 감정이 가라앉는다. 단순히 베껴 쓰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을 내 안에 다시 새겨 넣는 시간이다. 어떤 날은 그 문장 하나가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글쓰기는 이렇게 나를 다잡는 작은 의식이기도 하다.


때로는 단순히 하루의 기록을 적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된다.

“오늘은 이상하게 지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이렇게 짧게라도 적고 나면, 이미 그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글은 내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거리를 만들어준다.


외향적인 내향인으로 살아온 나는, 사람들 앞에서 웃고 떠드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진짜 내 마음은 글 속에서 더 온전히 드러난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못한 솔직함, 스스로도 몰랐던 내 속마음을 글을 쓰며 알게 된다.


50대가 된 지금,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하루의 끝에 글 한 줄이라도 남기면, 나는 오늘을 무사히 살아낸 증거를 갖게 된다. 그 기록들이 쌓여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앞으로도 살아갈 힘을 준다.


그래서 나는 안다. 글쓰기는 내향적인 내가 세상과 이어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방식이라는 것을. 글을 쓰며 나는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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