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노트 – 사주를 품는다는 건

by 봄날의꽃잎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부모는 일관성 있게 키워야 한다”였다.

나 역시 그렇게 믿었고, 한결같은 태도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애썼다.

그런데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깨달았다.

부모의 일관된 태도가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큰아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던 말이,

둘째에게는 상처가 되었고,

셋째에게는 전혀 힘이 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같은 집, 같은 부모 아래 자라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다르게 반응할까?

처음엔 단순히 기질의 차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가 흔히 혈액형이나 MBTI로 성격을 구분하듯, 아이들의 다름을 설명해주는 또 다른 언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때 내 손에 들어온 것이 바로 사주였다.


사주는 내게 점괘가 아니었다.

아이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아, 이 아이가 이렇게 반응하는 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 때문이구나.”

“내가 성급해지는 건 잘못된 성격이 아니라, 내 안의 불(火) 기운이 강해서구나.”

그 깨달음은 나를 덜 다그치게 했고, 아이들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했다.


엄마로서 나는 늘 부족했다.

성급한 말로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한 적도 있었고, 내 방식이 옳다고 밀어붙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주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이를 바꾸기보다 먼저 나의 기질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내 뜻대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진 성향을 인정하고 그 길을 지켜봐 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주를 맹신하지 않는다.

다만 사주가 일깨워 준 건, 운명은 정해진 답안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성향은 이미 타고났지만, 부모가 어떤 태도로 곁에 서느냐에 따라 그 길은 전혀 달라질 수 있었다.


〈사주를 품은 엄마의 노트〉는 그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전문적인 해석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아이와 부모를 이해하며 생겨난 작은 변화들을 적어 내려왔다.

엄마라는 자리는 완벽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배우고 다듬어지는 자리라는 걸 이제는 안다.


사주를 품는다는 건 곧, 내 가족을 있는 그대로 품는 일이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도 작은 안내가 되어, 엄마의 자리를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이 노트를 쓰는 동안,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이 곧 나를 키우는 시간이었음을 다시 확인했다.

사주를 품는다는 건 특별한 비밀을 아는 게 아니라, 가족의 얼굴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부족했던 엄마였지만, 글을 쓰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듬을 수 있었던 시간.

그 여정의 끝에 서 보니, 아이와 남편, 그리고 나 자신이 서로를 키워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주를 품은 엄마의 노트〉는 이렇게 작은 여정을 마친다.

이제는 또 다른 길을 향해 걸어가겠지만, 나는 안다.

엄마라는 자리는 완성이 아니라, 살아가는 매일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배움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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