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말은 보통
어디론가 떠나는 일을 뜻한다.
낯선 풍경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사진을 남기는 일.
그런데 내게는
여행이라는 단어가 딱 하나,
다른 의미로 남아 있는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조용히,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게 된다.
“아버지가 다녀오신 특별한 여행.”
6년 전, 아버지는 담도암 판정을 받으셨다.
수술을 받으셨고, 그 뒤로 장유착이 생겨 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처음 수술도 두려웠지만 재수술이라는 단어는 가족들에게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런데 재수술 후, 아버지는 의식을 잃으셨다.
아산병원 중환자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시간이라기보다 숨을 세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가족들은 매일같이 면회를 갔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 기도하고, 기다렸다.
그때 의료진은 우리에게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울지 못했다.
울면 정말 끝이 올 것 같아서, 차라리 숨을 꾹 참았다.
그날부터는 누구도 큰 소리로 희망을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갑자기 의식을 되찾으셨다.
눈을 뜨셨고, 사람을 알아보셨고, 말을 하셨다.
그리고 기적처럼 아버지는 퇴원까지 하셨다.
나는 그저 감사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퇴원하고나서,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 어디론가 가고 있었어.”
처음엔 수술 후 섬망 같은 걸까 싶었다.
중환자실에 오래 계셨으니
기억이 뒤섞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는 너무 구체적이었고
너무 또렷했다. 그건 그냥 꿈이라고 넘기기엔
너무 ‘장면’이 있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많았다고. 누군가를 따라 걷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섞여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이상한 것이 있었다고 했다.
네모난 쇠로 된 통.
사람이 한 명씩 그 통 안으로 들어가면
통이 점점 작아지더니 마치 통통 뛰는 것처럼 흔들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장면을 보며 이상하게도 공포보다 먼저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줄을 섰단다. 무조건 순번을 기다렸다고 했다.
이제 바로 앞.
한 사람이 지나서 아버지 차례가 되는 순간.
그때 누군가가 말했단다.
“마감됐습니다.”
그 한마디에 아버지는 갑자기 길에서 밀려나듯
다시 다른 곳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 다음 순간, 아버지는 자기 몸이
어딘가에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고
소리도 낼 수 없고 그저 누워 있을 뿐이었다고.
그 순간의 아버지는 의식이 없던 중환자실 침대 위였던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등이 서늘해졌다.
의식이 없었던 그 시간에도
아버지는 어딘가를 걷고 있었던 걸까.
아버지는 다시 그 길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마음이 더 급했다고 했다.
‘이번엔 꼭 그 통을 타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길을 빨리 가야만 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길 한쪽에 누군가가 서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단다.
아버지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사람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 할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돌아가신 분이 왜 여기 계시지…?”
그 생각이 드는 동시에 아버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있는 힘껏 달려왔단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침대 위였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다. 너무 비현실적이고, 너무 영화 같았고
너무 낯선 세계의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너무 또렷하게 말하는데
“거짓말” 같지가 않았다.
마치 그 일을 정말로 다녀온 사람처럼.
어쩌면 그건 꿈일 수도 있다. 환상일 수도 있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본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아는 건 하나다.
아버지는 그 길을 다녀온 사람처럼 달라져 있었다.
살아 돌아오신 뒤의 아버지는
무언가를 더 소중히 여기는 눈빛이 있었고
말수는 적어도 ‘살아 있음’이 얼마나 큰 일인지
몸으로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시간을 겪고 나서부터는
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평소엔 같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당연해서
말을 아끼고 마음을 뒤로 미루고
나중에, 다음에, 언젠가… 하며 살았는데
그때는 알게 됐다.
어떤 순간에는 “언젠가”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여행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 마음은 자꾸만 그 일을 이렇게 부르게 된다.
아버지가 다녀오신 특별한 여행.
그건 어디를 구경하러 간 여행도 아니고
누구에게 자랑할 여행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인생이
아주 잠깐 경계를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온 시간.
그리고 가족에게는 그 돌아옴이 기적이 된 시간이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는 그냥 수술 후에 꿈꾼 거겠지.”
맞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때 아버지가 그 길을 끝까지 갔다면
지금의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을 그냥 ‘병원에서 있었던일’이라고만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아는 가장 조용하고도 절절한 표현으로 그 시간을 이렇게 적어두고 싶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돌아오기 위해 다녀오신 여행.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여행의 끝이
“돌아옴”이었다는 사실에
조용히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