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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기 Dec 01. 2021

[학관] | 그곳에 그들이 산다

57년 된 학관을 허물고 새로 짓는다고 한다.

제1 과장 



기린, 또각, 2인(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추며 등장). 무대에는 책걸상이 한 채 놓여있다.     

 

(기린은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한 손에는 커다란 책을 들고 있다)     


(또각은 무릎까지 오는 테니스 스커트에 블라우스 차림이다)     


(기린은 무대 한가운데 서서 책을 읽는 흉내, 뭔가 쓰는 흉내, 공부를 하는 흉내를 하다가 꾸벅꾸벅 존다. 그러다가 다시 공부하다가 다시 졸고...)      


(또각은 무대 구석에서부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꺄르르 웃기도 하다가 무언가를 듣고 크게 놀라며 몸서리를 치다가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이야기하는 상대와 헤어지고 무대 중앙의 기린 옆으로 온다. 졸고 있는 기린을 깨운다)      


기린: (놀라며 일어난다) 어, 왔어? 

또각: (기린의 책을 보며) 뭐야, 공부했어? 

기린: 어, 중간고사 얼마 안 남았잖아. 

또각: (기지개를 키며)아~ 나도 공부해야 하는데.... 하지만 공부만 하기엔 날이 너무 좋고 캠퍼스는 너무 예쁘다(제자리에서 빙글 돈다). 이거 봐, 하늘은 맑고 향기로운 꽃 내음, 지저귀는 저 새들, 그리고... 아후 추워. 여기는 왜 이렇게 춥니 정말.  

기린: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책을 다시 본다) 

또각: 야 너 그 얘기 들었어? 

기린: 으응? 무슨 얘기? 

또각: (무서운 표정 지으며) 귀~신 

기린: 귀~신? 

또각: 응. 귀신. 여기 학관에 귀신이 있대. 

기린: 에~이 거짓말. 

또각: 진짜야. 저기 3층에 인문관이랑 학관이랑 연결된 통로 있잖아. 밤에 거기만 가면 여자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난다는 거야. 

기린: 그게 뭐? 

또각: 아니, 밤에 정말 아무도 없는데, 인문관에서 학관으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 또각, 또각, 또각 하면서 커지다가 다시 또 또각 또각 또각 하면서 작아지는데 문을 열어보면 아무도 없더래.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니까? 

기린: 뭐 다른 곳에서 나는 소리가 울려서 그런 거겠지~ 

또각: 다른 귀신도 있대. 그 왜 1층 매점 옆에 있는 큰 화장실 있잖아. 거기 예전에 민주화 운동하던 선배가 시위하다가 학교로 도망쳐왔는데, 그만 사복경찰들한테 발각되어서 화장실에서 맞아 죽은.. 아 돌아가신 거야. 그래서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계속 그 화장실에서 맴돌고 있대. 그래서 그런지 나는 거기만 가면 그렇게 스산하더라. 

기린: 거기가 좀 그렇지 뭐. 솔직히 여기 건물이 워낙 오래되어서 음산하긴 해. 여름에도 어쩐지 으스스하고. 

또각: 그치? 그렇대두~ 그래서 귀신들이 그렇게 몰리나 봐. 

기린: 에이 그래도 요즘 시대에 귀신은 난 좀 아닌 것 같아. 야. 지금 귀신 얘기할 때가 아니야. 너 다음 주가 중간고사인 거 몰라? 너 공부 하나도 안 했지? (책을 내밀며) 이거라도 좀 봐. 

또각: (책을 다시 밀어내며) 지금 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이거는 내가 아는 선배가 직접 겪은 건데, 들어봐 봐. (극적인 톤으로) 선배가 어느 날 밤에 늦게까지 중도에서 공부를 하는데, 학관 사물함에 책을 두고 온 게 기억이 났대. 그래서 한 밤 10시쯤 학관에 책 가지러 도착을 했는데 마침 경비 아저씨도 안 계셔서 그냥 5층으로 바로 갔대. 불은 다 꺼져 있고 문이랑 문은 다 닫혀 있고, 계단마다 놓인 거울이 그렇게 무서워 정말 눈 감고 5층까지 성큼성큼 걸어서 올라갔는데 거기 509호 강의실 앞에 창문 많은 곳 알아? 사물함 가려면 거기 지나가야 하잖아. 그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왠지 오싹오싹하더래. 그러다가 그 창문 근처쯤으로 다다르니까 창문에서 어떤 미친 여자가 깔깔깔깔깔깔깔하면서 웃는 소리가 나더라는 거야. 그러더니 거기 화장실 문 전체가 갑자기 덜컹덜컹하는데, 그게 마치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처럼 덜컹. 덜컹. 덜컹. 근데 거기 가면 죽을 것 같아서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움직이지 않는 걸 정말 간신히 정신 차리고 미친 듯이 뛰어서 내려왔대. 

기린: 아이 뭐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둡고 무서우니까 괜히 겁먹은 거 아니야? 으 무서워. 그 선배는 그래서 괜찮대? 아니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 이제 됐어. 나 공부해야 해. 

또각: 야야야 제일 무서운 귀신은 뭔지 알아? 대학원생인데 졸업논문 못 쓰고 죽어가지고 계속 학교에 남아서 애들 공부하는 거 지켜보... 

기린그만, 그만. 야 너도 이거나 봐 (책을 내밀며)

또각(책을 밀쳐내며, 새침한 표정으로) 됐어, 난 이거 많이 봤어.      


(기린은 고개를 숙이고 공부에 집중하고, 또각은 공부하는 기린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실실 웃으면서 장단 소리[굿거리장단] 퇴장한다)    


      

제2 과장      


악사들이 한바탕 연주를 하다가 소리를 줄이면 사회자 등장, 1인 


(또각은 여전히 무대 중앙에서 공부 중이다. 사회자는 무대 앞부분에 서서 대사한다)       


사회자: 아아 쉬-- 아아 쉬--- 때는 바야흐로 1960년. 전쟁 끝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교육으로, 공부로 입신양명하여 잘 살아보겠다고 여기 이 건물이 세워졌지. 그 뒤로 61년.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맞이했을 이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 리-모델링이 된다는 거야. 뭐 없어지는 부분도 있고 새로 만들어지는 부분도 있고. 지하부터 8층까지 싹 다 갈아엎을 계획이라니, 아무튼 앞으로 좀 시끄러울 모양 인가 봐. 그런데 오래되고 낡은 만큼 억울한 한 세상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고 있는 귀신들이 많지 않겠어? 인간으로서 한 많은 삶 마무리하고 귀신 평생 터 잡고 산 곳이 대대적으로 공사에 들어간다니, 학관의 터줏귀신들 큰일이 나서 대책회의를 한다는데...!      


[굿거리-삼채] 사회자 퇴장하고 악사들은 소리를 높인다. 

삼채 장단에 또각, 수면실, 화장실, 대학원생 춤추며 등장, 4인. 


(수면실은 편한 핑크색 추리닝 차림으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화장실은 낡은 청바지와 낡아 보이는 스웨터를 입고 날카로운 인상이다) 


(대학원생은 면바지에 셔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책을 한 권 들고 있다)


(4인은 한바탕 춤을 추며 무대 위에 등장해서 기린의 주변을 둘러선다. 장단 소리가 작아지면 모두 정면을 향해 선 채로 몸을 흔들흔들한다. 기린은 한기가 돈다는 듯 온몸을 감싼다)    


기린: 아휴 왜 이렇게 추워. 도저히 안 되겠다.      


(짐을 싸서 퇴장하는 기린. 귀신들의 고개가 퇴장하는 기린을 따라서 일제히 움직인다. 기린이 퇴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귀신들. 기린이 완전히 퇴장하자 장구의 ‘덩 딱’ 소리에 맞춰 고개를 돌려 책걸상 앞에 모인다. 다들 어딘가 흥분한 표정이지만, 대학원생만 책을 들고 읽고 있다)      


또각: (관객을 향해) 자자자 조용들 하시고. 오늘 제가 여기 여러분들께 보자고 한 이유는 말입니다. 

화장실: (소리 지르듯) 아니, 여기 없어진다며!! 

또각: 없어지는 것까지는 아니고 리모.. 

화장실: 어떻게 여기를 없앤다고 할 수 있어? 응? 얼~마나 유서 깊고, 역사가 오래되고, 내가 여기 화장실에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지내면서 응? 

수면실: (발랄하게) 화장실 저거저거 또 급발진한다. 없어지는 것 아니라니까 그러네. 

화장실: (갑자기 악을 지르며) 니들이 나한테 그럴 수는 없는 거야!! 내가 어떤 수모를 당했는데!!

수면실: 아 리모델링 몰라여? 없어지는 거 아니라 수리하고 재건축한다구요. 

화장실: 리모델링이고 자시고 난 모르겠고. 내가 살아 있을 때 이런 경우는 없었어. 원래 뭐 건물 하나 세우면 무너질 때까지 지내는 거지. 전쟁이 났어? 아니면 계엄령이 떨어졌어? 이 건물 털끝 하나라도 건드려봐. 그리고 새파랗게 어린 게 어디서 가르치려고 들어 엉? 

대학원생: (책을 펼쳐서 보다가 시끄럽다는 듯 귀를 막는다) 

또각: 하.. 화장실 귀신님 진정하시구요. 

화장실: 나는 아무튼 안 돼! 

수면실: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몰라. 

또각: 아참 화장실 귀신님. 말 나온 김에요. 제발 화장실 문 벌컥벌컥 열면서 학생들 겁 좀 주지 마세요. 저승 명예 관리 위원회에서 권고 들어왔어요. 성질난다고 애꿎은 학생들한테 자꾸 그러시면 어떡해요.  

화장실: 흥!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정말. 내가 내 화장실 문 좀 열고 닫겠다는데 뭔 상관이야? 

수면실: 에~이. 거기서 죽었다고 해서 거기가 님 꺼는 아니져~ 

화장실: 야!!! 

또각: 아무튼 건물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새롭게 지어지면서 당분간은 저희가 있을 곳이 없게 되었어요. 물론 일부는 완전히 없어지는 공간도 있구요. 

수면실: 아 아쉽다. 애들 머리 위로 통통 뛰어다니면서 지각하는 애들 깨워주는 게 내 낙이었는데~ 

또각: 그래서 말인데, 이제 앞으로 저희가 지낼 거처를 정해야 할 것 같아요. 힘들더라도 이곳에 남아서 버틸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인지요. 

수면실화장실다른 곳? 

또각: 뭐 여기서 제일 가까운 사회과학대 건물이나 제일 규모가 큰 중앙도서관? 아니면 새로 지어진 공과대 건물도 좋을 것 같아요. 여기서 조금 멀긴 하지만 재건축하기엔 한참 남았으니 오래 터 잡고 살 수 있겠죠?

화장실: 뭐??? 난 아무 데도 안 가!!

대학원생: (손을 번쩍 들면서) 중앙도서관! 저는 중앙도서관이면 좋을 것 같아요. 거기에 봐야 할 자료들이 있는데 여기에 묶여서 20년간 못 보고 있어요. 

수면실: 그러면 지금이라도 갔다 오면 되잖아요.

대학원생: 안 돼. 지금 읽어야 할 책들이 얼마나 많다고. 그리고 학생들 공부 잘하나 지켜도 봐야 하고. 

수면실: 그 애들 지켜보는 것 좀 그만하세여. 공부하다가 두통 호소하면서 수면실로 오는 애들이 한 둘이 아니라구요. 

대학원생: 그러는 너는. 애들 잠자는데 그 위로 뛰어다니는 거는 두통 유발 아니니? 

수면실: 저야, 잠자다가 지각하는 대참사를 막아주기 위한 정당방위인 거구요. 

또각: 두 분 그만하시구요. 그럼 대학원생님은 중도로 이전 신청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중도 귀신 대표님께 전갈 보내 둘게요. 

대학원생: 아 그러면 중도에서 가서 ooo교수님의 논문도 찾아보고, 새로 나온 책도 봐야지. 아 참 그때까지 이거 다 읽어야 해(다시 고개를 숙이고 정신없이 책을 읽는다) 

수면실: 흠 중도는 기존 귀신들이 워~낙 많아서 텃세가 심할텐데.. 아~~~ 난 어쩐담. 

또각: 여기에 남아있는 방법도 있긴 있어요. 음., 그렇지만 지금 수면실 귀신님 계신 곳은 아예 없어질 예정이라서.. 

수면실수면실이 없어진다구요??

또각네, 거기는 아예 없어지고 다른 공간으로 바뀔 거라 건물 내에서 다른 공간을 찾으셔야 할 거예요. 그것도 쉽진 않겠죠. 온통 공사판일 테니까요. 조용하게 지내기는 어려우실 거예요.  

수면실: 흠 고민이네~ 

화장실: 화장실이 없어지진 않겠지? 여기는 유구한 역사가 자리한 곳이라구. 

또각: 네네. 화장실은 안 없어집니다요. 물론 많이 낡은 만큼 대대적으로 손을 보겠지만요. 수세식 변기도 갈아치우고, 비데도 설치하고, 타일도 바꾸고. 여러모로 시끄러우실 거예요. 

화장실: 영 마음에 들진 않는군. 수세식 변시기, 비데니 아주 배가 불렀네 불렀어, 나 때는 말이야

수면실: (화장실 말을 끊으며) 그래도 아예 없어지는 것보단 낫죠. 에휴. 

또각: 어 그러고 보니 물구나무 귀신님은 아직 안 오셨나요? 분명히 연락드렸는데 

수면실: 뭐, 또 십자로를 물구나무서서 왔다 갔다 하고 있겠죠. 아 저기 오네요.      


(물구나무 팔과 다리가 거꾸로 된 채로, 뛰어들며 등장한다. 자세히 보면 바지를 상체에, 셔츠를 하체에 입고 있다)     


물구나무: 꺄하하 여러분 안녕하세여~~~~ 제가 좀 늦었어여~~~~~~~~ 

화장실: 저저 정신 사나운 것. 쯧쯧 

또각: 물구나무님, 오셨어요? 들으셨겠지만 이 건물이 리모델링을 하는데요

물구나무: 아 알져알져. 아니 글쎄 이번에 리모델링하면서 여기에 있는 귀신들이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거라는 소문이 교내에 자자하다니까요. 

또각: 아휴 투자라니. 그냥 살던 곳에 쭉 살고 있던 건데요, 뭘

물구나무: 그래도 헌 집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새 집 얻게 된 거니까여. 물론 앞으로 최소 5년은 먼지 구덩이 속에서 버텨야 하지만요. 

수면실: 그러면 물구나무님은 여기서 계속 지내시게요? 

물구나무아휴 근데 또 그게 어디 쉽나요. 저야 뭐 어차피 정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아무래도 공사 먼지에 기관지가 더 안 좋아질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답니다. 

수면실어디로요? 

물구나무: 지하 캠퍼스 단지요. 

수면실: 와~ 거기 완전 새삥 아니에요? 저 죽고 나서야 생긴 곳인데~ 

물구나무: 네~ 거기 가면 캬 이렇게 쫙 뻗은 대리석 복도와 나무 계단 사이에서 마음껏 뛰어다닐 수도 있구요. 그 옆에는 영화관이 뙇!! 공연장이 뙇!!! 고급 레스토랑이 뙇! 뙇!! 캬 상상만 해도 아주 짜릿하네. 여기 강의실밖에 없는 곳과는 차원이 다르지 암. 

화장실: 뭐? 그런 게 학교 안에 있다고? 신선한 학문의 공간에 공연장??? 영화관?? 

물구나무: 아우 화장실 귀신님. 화장실 안에서 애들 똥 싸는 것만 보고 계시니 시대에 이렇게 뒤처져서야. 

화장실: 뭐!!!

물구나무: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 건물 너무 오래되었잖아요. 내가 귀신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귀신 나오게 생긴 건물이라니까. 그러니 이제 부술 때가 되었지 뭐. 낡은 것은 때가 되면 사라져야 하는 법이랍니다. 

또각: 그래도 아직 제법 쓸 만한걸요. 유난히 이곳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고. 

물구나무: 어느 시대나 고리타분한 것들은 있게 마련이니까. 마치 저 화장실 귀신처럼... 

화장실: 저게!!! 

물구나무: 아이구 화장실에서 죽은 처녀 귀신이 귀신 죽이네~ 아이고 

수면실: 어머 여기 처녀 귀신 아닌 귀신이 어딨다고... 

물구나무아휴 무서워서 나는 이만 갈랍니다~ 구질구질한 학관아 안녕! 

화장실: 야! 너 거기 안 서? 


(물구나무 펄쩍이면서 퇴장한다. 화장실 쫓아가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또각: 하.. 저희 그래서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물구나무 귀신님은 지하 캠퍼스 단지로, 대학원생 귀신님은 중도로 가신다고 했고.. 

화장실: (팔짱을 낀 채 못 마땅한 표정) 나는 남고. 

또각: 수면실 귀신님은요? 

수면실: 저두 걍 남을래요.

또각: 수면실이 없어지는 데도요? 

수면실: 수면실이 없어지고 다른 곳이 생기면 또 거기에 자리 잡죠 뭐. 아마 새로운 곳에도 학생들은 왔다 갈 것이고, 저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겠죠. 어머! 그것도 무척이나 기대되는 일이네요. 

또각: 역시 수면실 귀신님은 꿈을 먹고 지내셔서 그런지 참 긍정적이세요. 

수면실: 그리고 교내에 이만한 곳도 없어요. 옛 건물 특유의 높은 층고, 고즈넉한 분위기, 창을 열면 따스한 정원이 보이고, 해가 잘 들어오지만, 이상하게 서늘한 실내. 

화장실: 그래, 간만에 맞는 말 하는구나. 내가 여기 처음으로 자리 잡던 시절엔 여기가 최신식이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좋은 곳이었어. 

수면실: 또각 귀신님도 여기에 계속 계실 건가요? 

또각: 저는 아무래도 옆 건물인 인문관으로 넘어갈 것 같아요. 원래도 인문관과 학관을 오가면서 지냈거든요. 

화장실: 그럼 여기에 나랑 저 까불거리는 놈만 남는단 말이야??

수면실: 에이 저라고 뭐 좋겠어요? (화장실이 화내려고 하자 진정시키며) 워워, 둘 밖에 안 남았으니 잘 지내봐요      


(화장실에게 팔장끼며 달라붙는 수면실. 그런 수면실을 떼어내는 화장실. 같이 퇴장한다. 그 뒤를 또각이 이어서 퇴장하고, 계속 책을 보던 대학원생도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허겁지겁 퇴장한다) 


(장단 소리가 커지고 작아지며 사회자 등장한다.)     


사회자: 그리하여 옛 건물이 새 건물로 다시 태어나는 동안, 우리 귀신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학관과 인문관을 또각또각 거리며 다녔던 또각귀신은 다리 건너 인문관으로 넘어가버렸고, 거꾸로 선 채로 돌아다니던 물구나무 귀신은 저저 멀리 지하캠퍼스 단지에 한바탕 놀러 갔고, 책만 읽다가 죽어버린 대학원생 귀신은 중앙도서관에서 제 소원 풀러가버린 중에, 화장실에서 학생들 놀래키던 화장실 귀신과 잠든 학생들 위로 뛰어다니던 수면실 귀신만은 학관에 남아서 새로운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허물어질 건물에 남든 새로운 곳으로 가버리든 어쨋든 원통하고 한 많은 삶들이 아니겠느냐. 이 무지공혼의 삶 달래려고 한 바탕 놀아보자~      

(노래 조로) 넋이라도 왔다가오. 혼이라도 왔다가오. 아~ 애 넋이라도 왔다가오. 혼이로다. 넋이로다. 무지 공산에 삼온혼령 아~ 애 무지 공산에 삼온혼령 왔소 왔소. 내가 왔소이다. 만신의 입을 빌고 몸을 빌어 내가 왔소이다. 배우고 배워 소원을 이루잤더니 뜻밖에도 원통하게 무지공혼이 되었구려. 아이고. 혼은 혼반에 담고 넋은 넋반에 담아 극락 세계 연화봉으로 가게하여 주옵소서. 나는 돌아갑니다. 화초 성경 연화대 왕생극락하오.     


사회자: 얘들아 모두 나오거라. 남창 동창이 다 밝았느니라.     


(장단에 맞춰 모든 등장인물 등장하여 난장 벌인다)





- 효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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