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소설을 쓰기로 했다.
01.
이건 수많은 사랑 중 하나에요. 지난주 결혼한 친구의 연애 이야기와도 같고, 작년에 헤어진 당신의 전 애인 이야기와도 닮았어요. 숭고한 세기말의 사랑이니 인간의 순수성을 뛰어넘는 감동의 스토리니 그런 건 없어요. 그저 새까만 아스팔트 위 구둣발에 짓밟혀 바스라져 가는 이 버거운 도시의 사랑이에요. 하지만 지레 슬플 건 없어요. 불행은 늘 나만 그렇다는 생각으로 시작되잖아요. 그런데 이건 누구나 그렇거든요. 이 도시에 넘쳐나는 흔하디흔한 사랑. 아, 한 100명 중 한 명쯤은 아닐지도 모르지만요.
버거운 도시에서 짝을 찾아 헤매던 저는, 그렇게 결국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전 정말 이 고양이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려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해야겠다 결심한 건 당연한 흐름 아닌가요? 이 나이쯤 되면 누구라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던데요?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요? 아니에요. 그럼 여태까지도 제가 듣고 살아온 이 숱한 말들은 다 무엇인가요. 비혼이요? 싫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제가 비혼인 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시더라고요. 왜 꼭 사람이 아니면 비혼이어야 합니까. 저는 따뜻한 온기를 함께 나눌, 남은 평생을 기꺼이 한 존재에게 오롯이 바치겠다는 그런 맹렬한 다짐을 제게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고양이가 제게 있어 그런 존재라는 걸 드디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마 주변의 많은 분들, 가족, 친지, 결혼한 친구들, 비혼인 친구들, 그 모두의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겠지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결혼 상대가 고양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특별할 게 없는 러브스토리입니다. 아침에 먼저 눈을 뜬 누군가가 아직 잠든 누군가를 쓰다듬어주고, 바람이 좋은 날엔 창을 열어 볕을 쐬며 함께 쉬고, 맛있는 걸 나누어 먹고, 종종 먹여주기도 합니다. 서로의 살결을 맞대고 온기를 느끼며 하루를 격려하고, 꼭 안은 채 심장 소리를 듣습니다. TV도 함께 보고, 뛰어놀기도 합니다. 한 가지 조금 더 다를 게 있다면 플라토닉이라는 것이겠죠. 하지만 사람 간의 연애에도 흔치는 않지만 플라토닉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더 물으셔도 특별할 게 없습니다. 우린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살아왔고, 이제는 법적으로 지켜 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가기로 한 것입니다. 누차 말하지만 사람과 고양이라는 것 외에는 누구나 하는 별 다를 것 없는 연애라니까요. 이 사랑이 대체 어디가 미친 겁니까?
02.
나에 대한 상담 결과를 짧게 요약하자면 ‘완전 정상'이었다. 당연하다. 난 지극히 정상이니까. 첫 번째 정신과 상담을 받은 후, 검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엄마는 뭔가 잘못되었다며 나를 또 다른 정신과에 데려갔다. 엄마의 지인의 지인의 지인이 의사로 있다는 다른 병원에서, 또 다른 병원에서 두 번의 검사를 더 받았다. 그렇게 총 세 명의 의사들로부터 나에겐 아무런 정신적인 문제가 없으며 완벽하게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라는 걸 확인했고 엄마는 그제서야 힘이 빠진 듯했다. 더 할 말도 없는지 세 번째 검사 결과가 나온 후 한 달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족들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완벽히 정상적이고 지극히 안정적인 상태에서 누구보다도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같이 살고 있던 고양이와 결혼을 발표했다.
고양이와는 2년 전 자주가던 단골 LP 바에서 처음 만났다. 바 입구는 지하 1층에 있었지만, 주류나 식재료를 보관하는 창고 쪽 뒷문은 지상 1층으로 연결되는 반지층 LP 바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먹을 것을 찾으려는 길고양이들이 뒷문을 통해 창고로 종종 숨어들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구름 한 점 없이 아주 맑은 날이었다. 산책하기 딱 좋은 선선한 밤에 고양이 한 마리가 LP 바로 걸어 들어왔다. 다른 길고양이들처럼 작게 열린 뒷문 틈새를 매끈하게 숨어들어온 게 아니라 주위를 다정하게 살피며 활짝 열린 입구를 뒤뚱뒤뚱 걸어 들어왔다.
갑작스런 고양이의 등장에 손님들도 하나둘 미소를 띤 채 웅성거리며 고양이의 움직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벌써 고양이를 쫓아버렸을 사장님도 이런 등장은 처음인지 헛웃음을 치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팔뚝보다도 작은 아기 고양이는 테이블 아래를 지나치며 사람들의 바짓자락 여기저기에 슥슥 몸을 비볐다.
“고양이가 아니라 완전 개네”
창고에 몰래 숨어들어 식재료를 훔쳐 먹는 불청객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모습이 기특했는지 사장님은 어느새 고양이가 먹을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는 아주 짧게, 또 다른 곳에서는 좀 더 길게, 그렇게 몇 테이블을 더 지나친 고양이는 나와 사장님이 앉아 있는 제일 안쪽 바까지 걸어왔다. 사장님은 자그마한 기본 안주 그릇 위에 몇 개의 쥐포 조각을 올려 내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쥐포를 다 먹고서도 한참 동안 내 옆자리를 뜨지 않았다. 바지와 신발에 몸을 비비다, 의자 옆에 오가다, 다시 몸을 비비기를 반복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의자 옆에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 머리 위에 손등을 올리며 말했다. 여리고 부드러운 털이 손등에 살포시 닿았다.
“사람 손을 탔나 봐요. 누가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직 너무 애기라서 누가 키우다 버렸을 것 같진 않은데...”
“생존 본능이지 뭐. 요즘 세상에서는 이렇게 해야 뭐라도 하나 더 얻어먹지. 그렇지, 개냥아? 일로와. 물도 먹자."
생존을 위해 본성을 버리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피워대는 고양이의 작전이 성공한 걸까, 사장님은 낮은 그릇에 정수기 물까지 받아 고양이 앞에 놓았다. 고양이 같지 않은 고양이. 강아지 같은 고양이. 개냥이. 나는 왠지 그 말이 듣기 싫었다. 본성을 거세당한, 혹은 스스로 거세해야만 했던 고양이에게 사람들은 귀엽다, 잘한다, 옳지를 연발했다. 넌 어쩌다 이렇게 됐니. 넌 네가 고양이인지 알고는 있니.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는 내 발에 얼굴을 연신 비비며 야옹 소리까지 냈다. 크고 둥글게 내려앉은 내 그림자 안에서 바닥을 뒹굴며 애교부리는 고양이의 모습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끓어오르는 듯 귀엽다고, 불쌍하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얘 니가 데려가야겠다. 간택 받았네, 너.”
“... 그러게요. 같이 가야겠네요.”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던 나는 그렇게 툭 고양이와 동거를 하게 됐다. 누군가는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너무 쉽게 결정한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내 마음은 동정심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강력한 무언가였을지 모른다.
“앞으로 네 이름은 묘야. 개냥이 아니고, 고양이. 묘.”
그 어떤 고양이보다도 가장 고양이 같은 고양이로 살게 해주고 싶어서. 꺾여서는 안 되었을 그 본성을 다시 돌려주고 싶어서. 그러니까 그냥 너처럼 살라고.
03.
“넌 올해도 소식이 없냐. 대체 결혼은 언제 할 건데.”
큰아버지의 말은 명절이나 중요한 가족 모임이 있을 때면 늘상 듣던 말이었다. 늘 듣던 말이라서 이제는 이게 잔소리인지 안방에 틀어놓은 TV 소리인지 분간도 안 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런 말이었다. 부모님은 가족 모임을 가기 전이면 나에게 늘 신신당부를 했다. 큰아버지가 행여 또 그런 말을 하더라도 집에서처럼 성질 부리지 말고 잠자코 듣고 대충 넘어가라고. 분명 대충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대충이 아님을 안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직접 하기엔 이제 너무 지친 그 말을 누군가라도 한 번씩 대신해주기를 바라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부모님의 숨은 바람과 달리 나는 그 말을 매해 잠자코 듣고는 대충 넘겼다. 자주 보는 것도 아닌데 굳이 꼬박꼬박 내 생각을 말할 게 뭐 있나 싶어 멋쩍은 척 큰아버지를 향해 한 번 웃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좀 달랐다. 결혼이라는 말이 다른 때보다 더 거슬렸던 것도 아니다. 어른을 이겨 먹고 싶은 철부지 같은 마음도 아니었다. 단지 아무 생각도 없는 척하기가 싫었을 뿐이었다. 나는 결국 옆에서 휴대폰을 보며 사과를 먹고 있던 사촌 동생, 그러니까 큰아버지의 아들까지 끌 들어와 기어코 모두의 속을 박박 긁어 놓았다.
“큰아빠, 요즘엔 결혼 늦게 하는 애들이 더 많아요. 얘 결혼할 때도 7살이나 어린 동생이 먼저 결혼한다고 저보고 뭐라 하셨는데 결국엔 지금 둘 다 싱글이잖아요. 일찍 갔다 다시 오나, 아직까지 안가나 뭐 다를 게 있어요. 그래도 경험은 다들 한 번씩 해보는 게 좋으니까 그러시는 거에요? 저도 경험해 보라고요? 결혼이 그렇게나 좋으시면 얘나 한번 더 시키든가요.”
옆에서 사과를 깎고 있던 엄마는 너무 놀라 반쯤 깎은 사과를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고, 다른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아빠는 어떻게 알았는지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쳐나왔다.
“너 지금 큰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왜요. 저도 제 생각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고양이랑 같이 살면서 지금처럼 지내는 것도 충분히 만족해요.”
“저..저게 고양이 데리고 살겠다고 할 때부터 내가 안 된다고 했는데. 기어코 정신이 나가서는 너 그 고양이 새끼 키우면서 평생 그러고 혼자 살겠다는 거냐.”
“아뇨. 평생 혼자 안 살건데요. 저 고양이랑 같이 살건데요.”
“...”
“저 고양이랑 결혼할 거에요.”
마지막 말은 정말 내 생각이었는지, 내 생각이 아니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분명 내 입에서는 저런 말이 튀어 나갔고, 주워담고 싶지 않았다. 단지 묘의 얼굴이 떠오르며 꼭 그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을 뿐이다. 그러고 나자 안 될 건 또 뭐 있나 싶었다. 속으로 내가 그런 다짐을 하는 사이 엄마는 사과가 담긴 접시를 나에게 던졌고, 사촌 동생은 그런 엄마를 말렸고, 큰아버지는 할 말을 잃은 채 얼굴이 시뻘게졌고, 아빠의 얼굴은 아마도 그보다 더 시뻘게졌던 것 같다. 집 안에 있던 다른 가족 누구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잇지 못했다.
묘와의 결혼 발표는 묘와 함께 살게 되었던 날만큼이나 싱겁고 신속하게 결정되었다. 대단한 결심도 아니었고 어른들에 대한 반항도 아니었다. 그냥 그리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그 순간 묘에 대한 나의 사랑과 책임감은 결혼을 하는 다른 모든 이들만큼이나 무거운 것이었다.
04.
나는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 정확히는 고양이와 결혼하겠다는 선언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렇게나 내뱉은 허풍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즉시 결혼 절차를 밟기로 다짐하였다. 그러나 일단 집에 도착해보니 나와 묘의 작은 보금자리는 퀴퀴한 고양이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고, 나의 잡동사니들 위로 묘의 털들이 빼곡히 내려앉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큰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과 언성을 높이면서 덩달아 흥분해버린 마음을 진정시킬 겸 청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작은 원룸 구석구석에서 흩날리고 있는 묘의 털들을 무선 청소기로 모조리 빨아들였고, 오랜만에 걸레질도 하였다. 뒤돌아 서면 또 털들이 있고 또 뒤돌아서면 털들이 휘날리고 있기에 그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묘의 화장실과 나의 화장실도 차례대로 청소하고 나니 뭐든 다 잘 해낼 것만 같은 과대감이 들었다.
마루바닥이 전에 없이 반짝 거리는 것을 보며 묘는 어색한 듯 구석에서 마른 울음을 울었지만, 그에게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던져주자 이내 정신없이 장난감에게 몰두하였다. 묘의 최애 장난감은 여러 갈래로 갈린 천 쪼가리에 작은 모터가 달린 장난감이었는데, 전원을 켜면 찍찍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정신없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묘는 장난감을 먼발치에서 노려보다가 적절한 순간에 달려들어 장난감을 움켜지고 다시 놓아주는 놀이를 좋아했다. 묘의 날카로운 발톱과 때론 이빨에게 수난 당하며 장난감은 조금씩 아작 나기 시작했다. 나는 묘의 몇 안 되는 야생적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노트북을 켰다. 결혼이라고 하니 왠지 모르게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준비를 해야 할 것만 같아서 문서 파일 대신에 무작정 엑셀 화면을 열었다. 결혼을 하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주변에서 결혼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아왔기에 결혼을 위한 절차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결혼을 하려고 보니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예식장 예약, 예복과 한복 맞추기, 웨딩 촬영, 예물과 예단, 혼수, 신혼집, 청첩장 등을 고려해야한다고 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결혼 선배들이 결혼에 관해 남겨놓은 방대한 양의 자료들이 있었고, 내가 검색을 하는 순간에도 결혼 준비를 위한 인터넷 카페에 실시간으로 질문과 대답, 팁, 홍보글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고양이를 비롯한 다른 종과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나는 실망하지 않고 구글에서 고양이와 결혼을 한 선례는 없는지 찾아보았다. 다행히 혹은 당연하게도 2018년도에 독일의 한 남성이 시한부였던 자신의 고양이와 결혼을 했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신랑-인간의 집 마당에서 가까운 가족과 지인을 불러 모아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초록의 잔디밭을 배경으로 하얀 레이스를 단 고양이와 그를 행복한 표정으로 안고 있는 남자의 사진을 보니 어쩐지 울컥하여 눈물이 고였다. 여전히 장난감을 있는 힘껏 내리치고 있는 묘를 보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가 턱시도를 입은 묘를 안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상상했다. 나만 착실히 준비한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날 수 있는 나의 미래였다. 고양이와 인간의 결혼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엄청난 위안이 되었고,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서둘러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화를 들어 친구들에게 나의 결혼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 묘랑 결혼해”
“뭐? 결혼? 너 남자친구 없었잖아?”
“아니 묘랑 결혼한다니까”
“묘? 네 고양이?”
“응”
“......뭐?”
묘와의 결혼을 알리는 대화에는 항상 정적이 흘렀다. 대부분은 나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였다. 나는 최대한 흥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의 고양이 묘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 것을 차분히 설명하려고 노렸다. 그리고 상대의 정적과 나의 반복된 설명의 끝에는 폭풍 같은 잔소리가 이어졌다.
“네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은 알겠어. 그리고 결혼하기 싫은 마음도, 아니 그러니까 인간 남자랑 결혼하기 싫어하는 것도 잘 알겠어. 근데 그렇다고 고양이랑 결혼을 할 필요는 없잖아? 결혼을 하지 않고도 고양이랑 살 수 있다고.”
“그렇지만 나는 묘와 결혼하고 싶어”
“결혼을 하면 뭐가 달라져?”
“우리의 혼인을 모두가 인정해주는 거잖아”
“하.. 그래 식은 올린다고 치자. 혼인 신고를 할 수는 있어?”
“그건 차차 시도해보면 되고”
“시도 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동성 간 결혼도 안 되는 나라에서 종족 간 결혼이 되겠냐?”
“신고는 못해도 괜찮아. 그냥 결혼이 하고 싶어. 난 묘를 사랑해”
“아니 왜 굳이 고양이의 삶에 인간의 제도를 끌어와서 사랑을 하겠다는 거니? 너 걔 의견은 들어봤어? 니 고양이는 너랑 결혼이 하고싶대?”
아뿔사. 그렇다. 나는 정작 묘에게 결혼에 대한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 상대의 동의 없이는 이 결혼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준비 과정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결혼에 대한 상대의 허락을 구하는 것. 즉, 프로포즈와 승낙이었다.
그래서 나는 묘에게 프로포즈부터 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의미 있는 장소에서 프로포즈를 하고 싶어서 우리가 제일 처음 만났던 LP 바를 빌리기로 했다. 약혼자에게 프로포즈를 할 거라는 나의 말에 사장님은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흔쾌히 영업을 하지 않는 평일 오후에 공간을 빌려주셨다. 그리하여 어느 월요일 오후 4시. 나는 묘와 함께 우리가 처음만 LP바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묘 잠깐만 기다려. 잠깐 준비 좀 할게”
이동장에 얌전히 앉아 있는 묘를 보며 나는 바의 의자와 테이블을 한 쪽으로 몰아넣고 빈 공간에 묘가 제일 좋아하는 캔으로 커다란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묘의 목에 걸어주기 위해 주문 제작한 작은 목걸이도 하나도 두 손에 쥐었다. 내가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는 동안 묘는 전에 와봤던 공간이라 그런지 금세 익숙해진 모습으로 이동장에서 나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반지층 공간에서 유일하게 해가 내리쬐는 창가 선반 위로 올라가 몸을 웅크리고 눈을 꿈벅이기 시작했다. 나는 묘가 가만히 앉아 있는 틈을 놓치지 않고 내가 만든 하트 모양 안으로 들어가 묘를 바라보며 묘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꺼내 읽었다.
05.
사랑하는 묘에게.
묘. 나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아마 이 편지를 읽는 지금의 우리는, 우리가 제일 처음 만났던 성수동 LP 바에 있겠지.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때 말이야. 나는 바싹 말라 누렇게 변색 되어버린 이파리 같은 모습이었어. 당시 내 삶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거든.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 모두 밤늦게까지 일을 하시는 바람에 집에는 늘 나 혼자였어. 텅 빈 방 안에 새우처럼 굽어 잠들면서 누군가 내 옆에 함께 있어주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 외로움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한 끗 차이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대신에 일찌감치 돈을 버는 일을 선택했어. 그렇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지. 나름대로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사람들한테 치이고 치이다 보면 남들은 저만치 앞서 있고 나는 항상 제 자리에서 헛바퀴만 굴리고 있더라고.
연애를 통해 위로받고자 했던 순간들도 있었어. 남자 사람이랑. 그렇지만 오해는 마. 뜨거운 사랑은 단 한 번도 없었어. 그냥 누군가 먼저 나에게 호감을 표하면 상대가 내 마음에 쏙 들지는 않더라도 나에게 베푸는 호의가 감사해 마음이 서서히 기울어 연애를 시작하곤 했지. 처음의 설렘이 잦아들고 나면 건조한 데이트와 습관적인 섹스를 반복하다가 차라리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이 덜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연애를 끝냈어. 때론 그들은 나와 그 어떤 정서적 교류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어떤 역할만을 기대하는 것 같았어. 연애를 하든, 하지 않든 나는 여전히 아무도 없는 집에서 새우처럼 구부린 채 잠을 청했고, 내 삶은 어쩐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내려지는 것 같았지. 그렇게 지쳐서 아무런 의지도 생기지 않을 것 같을 때,
묘, 너를 만난거야. 아직 너무 작아 어느 고양이처럼 도도하게 걷지도 못하던 너. 짧게 곤두선 털을 하고 뒤뚱거리며 나에게 와서 살을 부비었을 때, 온 몸에 따뜻한 소름이 돋았어.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치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내 인생의 중요한 조각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 그건 어느 사내를 만났을 때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어. 작은 너를 내 두 손으로 잡아들었을 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끝을 알 수 없는 파도가 올라오는 것 같았어. 그리고 동시에 어떤 확신이 들었지. 너와 함께 한다면 헛바퀴만 돌리던 내 삶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지 긴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나는 나의 확신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
나는 그 어떤 남자 사람보다 묘, 너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해지는 기분을 느껴. 너는 나에게 캔 따개 이상의 복잡하고 심오한 역할을 요구하지도 않잖아. 그러면서도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그건 나의 부모도, 나의 전 애인들도 하지 못했던 일이야. 그러니 나는 너와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결혼은 인간들의 제도이지. 나도 그 제도 안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러나 내가 너에게서 느꼈던 안정감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세계에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나는 너와의 관계를 결혼으로 묶어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우리의 결혼 생활을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를 잘 지켜주겠다는 다짐도 할게. 너에게 늘 신선한 음식과 깨끗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너를 사랑으로 아껴줄거야.
그러니 너만 괜찮다면, 묘야, 너도 나를 사랑한다면, 나와 결혼해주겠니.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은 후 묘를 쳐다보았을 때 묘는 발을 모은 채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심히 편지를 접고, 하트 밖으로 걸어나가 묘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묘는 내 손을 한번 쓱 핥터니 창가에서 폴짝 내려와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는 그르렁 소리를 냈다.
그르렁. 나는 그것을 프로포즈를 승낙한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와 묘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었다.
06.
묘와의 결혼 준비는 어렵지 않았다. 그는 여느 사람들처럼 욕심이 많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화려한 결혼식도, 집도, 예물도, 혼수도 필요하지 않았다. 묘에게 나는 소중한 사람이었고 나에게 묘는 소중한 고양이었다. 그에게는 어떤 계층도 계급도 없었다. 그는 여느 남자들처럼 수준을 따지지 않았다. 그저 우리의 취향과 호불호만이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의 결혼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졌다.
어려운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식장을 찾는 일이나, 예복을 고르는 일 모두 쉽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답답해하지 않도록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는 어두운 결혼식장은 포기하기로 했다. 고양이와의 결혼을 선택한 나에게 긴 버진 로드도 높은 천고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묘가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는, 푸르른 잔디가 펼쳐져 있고 적당히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야외에서 식을 올리고 싶었다. 나는 여러 날의 결혼 준비 커뮤니티와 포털을 뒤지고 뒤져서 결국 서울 안에 60석 정도 마련할 수 있는 식장을 찾았다. 그러나 예약을 하자 큰 난관에 봉착했다.
- 고양이랑 결혼을 하신다고요?
“네"
- 하객들 중에도 고양이가 있고요?
“네, 그렇습니다.”
- …….
“가능할까요?”
- 네, 고객님……. 이런 경우는 없었지만, 우선 저희는 식장에 동물을 데려올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
고양이와의 결혼식도 허가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 네, 죄송합니다.
여러 곳에 연락했지만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원래 애완동물 출입이 가능하다고 안내된 곳에서도 고양이와의 결혼식을 반기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근처 공원의 작은 부지를 빌려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예복을 빌릴 때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그들은 네? 하고 되묻거나 장난전화로 받아들이거나 말을 잃었다. 내가 진심임을 깨달으면 곧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결국 예쁜 드레스를 입는 것은 포기해야 했지만, 딱히 결혼식에 큰 로망이 있지도 않아서 나는 금방 마음을 내려놓았다. 인터넷에서 셀프 결혼식으로 검색하면 수많은 흰색 원피스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중에 저렴한 원피스 하나를 골랐다. 식장이나 예복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묘와 결혼한다는 사실, 우리가 평생 함께할 것이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07.
어디에서 소문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내 결혼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에 휩싸였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와 결혼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고양이와 결혼한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은 내 결혼식을 특이하다고 여겼다.
- 안녕하세요. 별난 세상사의 김주연입니다.
오늘은 TV에서 내 사연을 소개하는 시사 방송이 송출되기로 한 날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작가와 피디의 긴 설득 끝에 인터뷰에 응하기로 결심했다.
“결혼이 마치 꼭 해야 되는 것 마냥 강요되는 세상에서 이런 행보는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은 요즘 세대에 응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런 의도로 결혼을 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도 솔로라는 같은 나이 또래의 여자 작가님의 말이 인터뷰를 참여하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다. 평생 TV 같은 데 나올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TV에서 비치는 내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인 양 좀 낯설었다. 촬영하던 날 마음속의 긴장도 떠올랐다.
- 아니, 얼마 전에 스튜디오를 보러 오신 분이 고양이와 결혼식을 한다는 거예요.
- 아, 이 분 저희 회사 분 맞으세요. 고양이와 결혼하신 대서 저는 그냥 고양이와 둘이 기념사진 정도 찍는 줄 알았는데, 결혼식을 고양이와 올리신다고요?
- 아, 그 친구 제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원래도 좀 특이한 친구였어요. 친구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좀 겉돌았다고 해야 하나.
TV 속에 소개되는 나는 괴짜인 30대, 매우 외롭고 어두운 솔로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외롭게 나이 먹고 있는 혼기 지난 여성.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내가 소개된 이후에 내 인터뷰가 나왔다. 이때만 해도 큰 걱정은 없었다. 내 인터뷰 후에는 분명 방송 흐름이 바뀌어 있을 것이라 기대했으니까.
- 고양이와 결혼을 하지 않아도 평생을 같이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굳이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상대가 사람이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사랑한 존재를 찾은 것을 기념하고 평생 함께할 것을 약속하잖아요. 저는 묘와 그렇게 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 고양이 묘의 생각은 어떨 것 같습니까?
- 저는 그에게 가장 큰 사랑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도 저에게 이런 절대적인 사랑을 내비친 적이 없어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 존재 자체로 이해받고 받아들여주는 것은 묘뿐입니다. 사랑은 말보다 수많은 형태로 내비치지요. 말로 내비치는 사랑이 거짓일 때도 많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묘도 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 사실 결혼이라는 게 정신적인 사랑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신체적인 사랑, 2세의 탄생, 이런 것의 의미도 함축하지 않습니까?
- 피디님은 스킨십을 하면 할수록 외로움이 짙어지는 연애를 해본 적 없으신가요? 2세도 저는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위해 사랑을 수단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묘를 사랑하고 묘의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한 사랑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 고양이와의 결혼에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으시는지요?
- 묘와의 결혼 준비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묘와의 결혼에는 어떤 레벨도, 비교도 없으니까요.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저희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만족하고 있어요. 가장 힘든 것은 오히려 사람입니다. 저희의 결혼이 보편적인 결혼이 아니어서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으니까요.
- 예를 들면요?
- 저희를 받아들여주는 식장이나, 예복 하나, 예물 하나 찾는 것도 힘들었어요. 미친 사람 취급하는 곳들도 많이 보았으니까요.
- 그럼 세상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 그저 다른 사람이 결혼하듯 제 결혼에 대해 큰 의문을 품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것이요. 다만 그게 현실에서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방송은 마지막으로 어두운 저녁에 앵글을 등지고 걸어가는 내 모습에 이런 멘트를 걸었다.
[ 그녀는 세상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고양이를 사랑해 행복하다는 그녀의 뒷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했다. ]
그 이후엔 정신과 의사가 나와 최근 2030대가 겪는 관계의 어려움과 외로움, 관계에서 점차 고립되어 가는 사회적 환경에 대해 얘기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삶이 힘들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가족들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방송에서 그리는 나는 고립된 30대 솔로 여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그제서야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송 직후 가족들은 발칵 뒤집혔다. 가족들만 뒤집힌 건 아니었다. 스마트폰에 부재중 전화와 메신저 메시지가 미친 듯이 쌓이기 시작했다.
- 너 정말 어쩌려고 그래?
“어쩌긴. 결혼하라고 해서 결혼하잖아.”
- 아니, 너 정말. 집안 망신도 유분수지. 고양이랑 결혼을 할 때 하더라도 혼자 해. 이년아. 아버지 아직 정년도 안 끝났는데 우리는 어떻게 얼굴 들고 살라고 방송까지 나가 나가길?
“이렇게 나갈 줄 몰랐어.”
- 결혼이고 나발이고 너 당분간 사람들 만나지 말고 있어. 고양이랑 결혼? 집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그런 짓 하기만 해 너!
그날 이후로 친구들은 슬슬 내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연락이 닿는 것은 절친했던 한두명의 친구들이었지만, 그들도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내 뒤로 수군거림이 들렸다. 뭐라고 수군거리는지 들리진 않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오프라인에서 예의를 차리던 사람들도 인터넷 댓글은 솔직했으니까.
- 와, 이젠 하다 하다 고양이랑 결혼한다고?
- 정신병 아냐?
ㄴ정신병은 무슨. 이런 걸 관종이라고 합니다.
- 옛날에 베개랑 결혼한 남자 생각나지 않아요? 베개는 감정이나 없지 고양이는 뭔 죄임?
- ㅋㅋㅋㅋㅋ 한남이 얼마나 별로면 고양이랑 결혼을 하겠습니까?
ㄴ 페미년 꺼져
그나마 이런 댓글은 양호했다. 몇몇 남초 사이트에서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조롱이 난무했다. 어떤 댓글에서는 토론이라는 명목하에 남녀 간 혐오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동물 동호회에서는 고양이를 낯선 곳에 데리고 다니고 인간의 틀에 가두려고 하는 동물 학대로 받아들여 국민 신문고에 결혼을 금지시켜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내 신상과 모자이크를 벗은 사진은 끝없이 퍼져나갔다. 회사로 항의와 장난으로 점철된 전화가 빗발치게 들어왔다. 우리 집안은 아주 평범한 집안이었다. 하루아침에 나는 집안에서 그 많은 아들들을 제치고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물론 문제아로 말이다.
며칠 뒤 회사에서는 나를 불렀다. 고양이와 결혼한다는 나는 정상이라는 정신 감정 결과를 전달했으나 사내외로 들끓는 여론과 뒤숭숭한 분위기를 어찌할 수 없었던 회사는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외롭지 않았다. 고립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묘와 결혼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고양이와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듣는 사람들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고 나를 고립시켰다. 그 들끓는 여론 속에 나와 묘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묻고 싶었다. 내가 정말 외롭고 고립된 사람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싶은 건가요?
08.
결혼은 이 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청첩장을 돌려야 했다. 아빠는 청첩장을 보더니 더 이상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울면서 이제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두 명 남은 친구들은 모바일 청첩장을 받더니 이제 그만 고집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이제 이것은 세상을 향한 나의 투쟁이자 내 인생의 과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청첩장을 들고 처음 묘를 만났던 LP바로 갔다. 사장님은 웃으며 나와 묘를 맞이해 주었다. 나는 사장님에게 청첩장을 보여줬다. 사장님은 초대받아 기쁘다고 했다. LP바의 손님들은 TV에 나온 나를 알아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청첩장을 보여줬다. 묘와 내가 청첩장 가운데에 은은한 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내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 그곳에는 부모님의 이름은 없었다. 그저 묘와 나의 이름만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완전히 우리 둘만의 이야기였으니까. 술에 취한 그들은 청첩장을 열어보더니 나에게 웃으며 축하를 건냈다. 청첩장이 예쁘다고도 칭찬도 건냈다. LP바 사장님은 <신부에게>를 틀어주었다. 묘는 기분 좋게 캣잎을 뜯었고 나는 위스키를 들이켰다. 사람들은 돌아가며 나에게 잔을 부딪혀 왔다.
내가 LP바로 갔던 이유는 사장님께 청첩장을 돌리기 위함도 있었지만, 묘의 친구들에게 우리의 결혼 소식을 전하기 위함도 있었다. 나는 살짝 알딸딸한 기분으로 LP바의 뒷골목으로 갔다. 그곳은 묘와 함께 길거리 생활을 하던 수많은 고양이들이 드나드는 길이었다. 나는 그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그 동네의 고양이들은 사람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평소에는 경계가 매우 심해서 먹을 것을 들고 가더라도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고양이들은 마치 내가 반가운 듯 나에게 다가와 간식을 먹고 내 몸에 자신들의 몸을 비볐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나와 묘의 관계가 진정으로 인정받았음을 느꼈다. 나는 LP바의 뒷골목에서 달아오르는 술기운을 느끼며 조용히 묘의 얼굴과 목을 쓰다듬었다. 묘는 그르렁 거리며 내 손길을 즐겼다.
09.
결혼식 날이었다. 이 결혼을 반기듯 날씨는 화창했다. 적당한 햇빛이 잔디에 드리웠고 바람은 선선했다. 하늘도 우리의 결혼을 축복하는 듯했다. 여러 방송국에서 내 결혼 과정을 찍고 싶어 했지만,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에 내가 정의 내려지는 것을 거부했다. 어딘가에 방송국 사람들이 숨어서 이 과정을 찍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기로 했다. 위험은 방송사에만 있지 않았다. 타인의 관심이 중요한 인플루언서들이나 나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이 오픈된 식장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몇몇 동물보호협회로부터 협박 편지를 받기도 했으니까. 그들이 어떻게 내 집주소를 알아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들에게 따질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방송이 나갔던 한 달 전보다 많이 식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중에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엄마와 친구 둘이 전부였다. 그들은 이 결혼을 축하하려고 온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장소를 공유할 뿐이었다. 평상복 차림으로 식장 입구를 단단히 막아선 엄마는 내 배로 진짜 별난 년을 낳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어이가 없어 눈물도 안 나온다고 했다. 친구들은 그런 엄마를 달래기에 바빴다. 그래도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은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 축하의 의미를 전하는 LP바의 사장님과 손님 세 명이 결혼식이 참석했다. 그들은 즐거운 얼굴로 내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있었다. 호기심일지도 모르고 흥미로운 것일 수도 있으나 나는 그들이 내 결혼식에 긍정적인 감정을 가져주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것은 매우 귀한 감사였다. 오늘 주례는 우리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 결혼식에 힘을 실어준 LP바 사장님이 맡아 주시기로 했다. 식장의 한 켠에는 결혼식에 참석할지도 모를 고양이들을 위한 식사와 간식거리들이 놓여 있었다. 몇몇 길고양이들이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조심히 식사에 다가와 조심스레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결혼 행진곡이 울렸다. 심플하고 장식이 없이 하얀 드레스를 입은 나는 나비넥타이를 걸친 묘를 조심스레 안고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묘는 이지혜 양을 동반인으로 맞아 평생 아끼고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미야옹-“
기특하게도 묘는 내 품에서 사랑스럽게 대답을 해주었다.
“이지혜 양은 묘를 동반묘로 맞아 평생 아끼고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나는 묘에게 반지가 걸린 목걸이를 걸어주고 내 왼손 약지에 얇은 금반지를 끼웠다. 그 순간이었다.
“키야-옹”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찔렀다. 묘는 앞발을 세웠다. 제지할 새도 없이 묘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나를 할퀴었다. 묘를 만난 이래 가장 공격적인 몸짓이었다.
“아!”
내 손을 빠져나간 그는 하객들 다리 밑을 미끄러지듯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를 잡으려고 여러 명의 손길이 뻗어나갔지만, 아무도 그럴 잡아챌 수 없었다. 그는 고양이 하객들에게 다가가 밥그릇에 고개를 박고 사료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는 그르렁 거리며 몇몇 고양이에게 몸을 부벼댔다. 순식간에 식사 공간을 침범 당한 고양이들 사이에 날카로운 소리와 몸짓이 오고갔다.
“하하, 우리 묘가 배가 많이 고팠나 봅니다.”
재빠르게 고양이 하객석으로 달려 간 LP바 사장님이 묘를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러나 묘는 다시 공격적으로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사장님을 노려 보며 그르렁거렸다. 그러더니 식장을 뒤로하고 미친 듯이 잔디밭을 달려 나갔다.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무 당황스러워 쫓아갈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의 표정은 황망함 그 자체였다.
“이년아, 잘하는 짓이다. 고양이랑 결혼을 해? 그만해. 이런 미친 짓!”
엄마의 목소리가 등 뒤에 들려왔다. 그 목소리 뒤로 날카롭게 울던 묘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뒤이어 엄마의 넓은 손바닥으로 내 등을 치는 것도 같았다. 마치 작은 무대가 끝난 것 마냥 자리에서 일어나 바삐 짐을 챙기는 여섯 명의 하객들이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그렇지만 나는 그저 오른팔에 깊게 새겨진 묘가 할퀸 자국만을 한참을 바라볼 뿐이었다.
희-효-현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