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21. 金
6시 알람이 울리고 계단을 내려와 문을 열자마자 햇살이 쏟아졌다. 눈을 뜰 수도 없게 쨍했지만 오랜 비 끝에 하늘이 개었다는 게 왠지 감동적이었다. 햇살 아래 자동차 유리가 반짝이며 세상이 밝았다. 햇살이 비친 세상을 은근히 즐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순간순간 집중해 사소한 것에 영감을 얻는다,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말이었지만 따라보진 않았다. 그러다 표시한 부분을 읽으며 자문했다. ‘나라면 뭘 봤는지 말할 수 있을까?’ 못한다. 눈앞에 놓인 할 일을 하느라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 주변에 어떤 것이 있는지도 모른 채 어영부영 살고 있었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을 나열해놓고 할 일을 처리하는 게 인생이라 믿고 있었다. 순간에 가만히 놓여있는 법을 몰랐고 닭이 날갯짓하듯 자꾸만 동동 굴렀다. 그렇게 요즘 내 삶에는 공백이 없었다. 무언가를 할 때 항상 음악을 틀었고, 걷거나 먹을 때는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틀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조용하면 불안했고, 그동안 내 안에서 썩어가던 불안과 괴로움의 냄새가 났다. 순간을 가리지 말고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틀었던 음악을 끄고, 주변의 공기, 촉감, 냄새, 소리에 집중해 보자. 밖에서는 아이들이 내는 소리나, 자동차 경적음이 띄엄띄엄 들려온다. 옆에는 고양이 우유가 새우처럼 누워있다. 해가 지랑 말랑 어둑어둑하고 나른한 저녁이다. 이불에서는 옅은 페퍼민트 향기가 난다. 내 삶이 이토록 다채로웠던가. 이제 차를 머금고 향과 맛을 느끼듯 조용히 순간을 음미하며 살아가야지. 지금까지는 차를 벌컥벌컥 들이켜듯, 순간을 삼켜온 것 같다.
토지의 몇 가지 서문을 읽으며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동시에 그 진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란 진심을 자기 자신보다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깨닫고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란 모든 의심과 모순 속에 깊이 들어가 있는 존재라고. 작가의 에세이에서 비관적이라 느껴질 만하지만 자유로운 생각을 자주 목격해 왔다..
요즘에야 이런 생각을 한다. 어딘가로 날아오르기 위해 미친 듯이 날갯짓을 해 날아올라 행복에 다다를 수 없고, 그저 매 순간 나 자신에게 만족하고 기뻐하고 편안히 웃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1초 뒤에 죽더라도 아무런 후회 없이 웃을 수 있는 삶. 어떤 일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매달리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 나의 선택에만 집중하는, 가벼운 삶. 삶이 내게 너무 무거워 삶을 피해 끝까지 도망쳐온 내게 너무도 절실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