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No.5 는 관성적이지 않았다.

by Carol


요즘 오빠나 친구들과 고민을 서로 나누다 보면

가장 큰 고민이 '내 주변의 관성적인 흐름'일 때가 많다.


아무리 나에게 불합리하고 불편한 상황이나 결정이 있더라도 그에 대한 설명이 '우리는 늘 이래왔어. 다들 이렇게 살고 너만 이 일을 겪는 건 아니야.'라는 말 뿐일 때. 게다가 어딘가에 분통을 터뜨리거나 문제제기를 해볼까 싶어 둘러보면 어쩐지 흥분한 건 나 하나뿐, 모두 물 흐르듯 평온한 얼굴일 때.

나 스스로의 고민으로 내린 결정에 대해 가족들조차 사회에서 관성적으로 인정받는 잣대들을 들이밀며 저울질하고 의심할 뿐, 지지나 응원을 보내주지 않을 때.

관성은 때론 편안하다. 외부의 무리한 힘 없이 내가 준 힘만으로 또 다른 일을 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빨래를 꺼내는 힘을 그대로 부드럽게 옮겨 건조기에까지 담아버린다든지 하는.

하지만 그 관성이 맹목적인 강요를 대신할 가리개로 쓰인다면, 지금까지 힘이 올바르게 쓰였는가에 대한 고찰 없이 아래로 흘러 늘 그래왔다고 난색을 표하며 내려 찍힌다면, 그 힘을 버텨내야 할 누군가는 막막해진다.

나는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톱니바퀴의 톱니처럼 굴러가던 내가 어느 날 내게 닥쳐온, 불합리하지만 자연스러운 관성 앞에서 모든 소름 끼치는 쇳소리와 그 후의 덜컹임을 각오하고 톱날을 치켜세울 수 있을까.


샤넬의 오랜 클래식. 에르메네스트 보의 No.5는 '장미향은 장미답게'처럼 향을 사실주의적으로 만들던 시절에 탄생했다. 당시엔 생소한 추상적인 향기 프레젠테이션과 합성향료인 알데하이드 사용으로 세탁소 냄새 같다, 비누 아니냐 하는 식의 혹평도 일었다고 한다. 그러나 No.5는 자연물인 꽃의 향기를 모사하던 향에서 벗어나 '여성'과 '여성성'이라는 관념을 향으로 구체화하는 예술적인 작업을 처음으로 시도했고, 결국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 지금까지 전설적인 클래식향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는 나의 사람들 중 누구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톱니이길 원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관성을 강요당하는 행성에 떨어진다면, 나는 일치감치 당당히 외계인임을 외치고 행복하라고 응원할 것이다. 후에 누가 클래식이 될지 모르는 세상에서 내 향기를 꽁꽁 싸매고 감춰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