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부터 2004년, 나는 국군부산병원에서 의무병으로 군 복무를 했다. 그 시절 나의 후임 중에는 훗날 대한민국 충무로의 빛나는 스타가 될 김성균 배우가 있었다. 김성균 배우는 당시 초소병과 취사병이 보직이었다. 2001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어느덧 24년간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의 시작을 함께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꽤나 신기하고 흥미로운 기억이다.
내가 처음 본 그의 인상은 앳된 소년 그 자체였다. 큰 키에 마른 체격, 그리고 얼굴 가득했던 여드름이 인상 깊었다. 그는 사회에서 연극을 하다가 왔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선임병들은 곧잘 그에게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건달 역할을 했던 최민수 씨의 성대모사를 시키곤 했다. 특히 그가 사형을 받기 직전 "나 떨고 있니…" 바로 그 대사였다. 그때마다 그의 굵직한 목소리와 제법 그럴듯한 연기 흉내에 병실은 금세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나는 배우는 대개 잘생긴 사람들이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눈에 띄게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던 그가 이토록 대성할 배우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같은 시기에 그를 지켜봤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저 우리는 그의 유쾌한 성대모사에 웃음 짓고, 앳된 소년의 모습 뒤에 숨겨진 재능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군복을 벗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나는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스크린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박창우. 서늘한 눈빛과 비릿한 웃음이 섬뜩했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은 연기력은 그가 더 이상 최민수 성대모사를 하던 앳된 후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어진 **"이웃사람"**의 소름 끼치는 연쇄 살인마 류승혁은 또 어떤가. 그 연기를 보며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저 "나 떨고 있니"를 흉내 내던 소년에게서 이토록 강렬한 연기가 뿜어져 나올 줄이야.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푸근하고 정감 가는 김성균으로 완벽하게 변신하여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최근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에서는 이재만 역을 맡아 강렬한 액션은 물론, 딸을 향한 절절한 부성애를 선보이며 또 한 번 나를 감탄하게 했다. 넷플릭스에서 **DP**에서 보여준 그의 부사관 모습을 또 어떠한가? 어떤 부사관보다 더 부사관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악역부터 코믹, 휴먼 드라마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캐릭터 그 자체가 되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군 시절부터 품고 있었을 배우로서의 열정과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김성균이라는 배우는 마치 이 문구처럼, 앳된 시절의 자신이라는 알을 깨고 나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로 비상하며 자신의 재능을 꽃피웠다. 배우라는 껍질 안에 안주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캐릭터로 도전하며 스스로를 확장해 나가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
20여 년 전, 국군부산병원에서 함께 군 생활을 했던 한 후임병이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충무로의 스타가 되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나에게 잔잔한 감동과 함께 묘한 뿌듯함을 안겨준다. 한때 대한민국 야구계의 전설적인 해설자였던 하일성 씨의 유명한 말처럼 "야구 몰라요." 승부가 언제든 뒤집힐 수 있고,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가득한 야구 경기를 빗대어 할 말일 텐데, 정말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그의 앞으로의 연기 인생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