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을 주는 역설적 지혜
한국인들이 흔히 헤어질 때 하는 인사 중에 "연락드릴게요"라는 말이 있다. 영어 표현으로 "I will be in touch" 정도에 해당하는 이 표현은 자신이 먼저 연락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연락 주십시오" 혹은 "연락 기다릴게요"라고 말하며 상대방에게 연락의 주도권을 넘긴다. 이러한 작은 언어 습관은 사실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주는 인상을 통해 관계의 역학을 미묘하게 조절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블랙스완 그룹의 수장이자 세계적인 협상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보스(Chris Voss)는 그의 저서 "Never Split the Difference"에서 이와 유사한 협상법을 이야기한다. 그는 상대방에게 통제감과 주도권을 주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실제로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어가는 역설적인 전략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상대방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예를 들어, 협상에서 상대방에게 "이 제안이 당신에게 어떻게 느껴지나요?"와 같은 질문을 던지거나, "당신이 결정할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이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한다고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과 정보 제공은 결국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돕는 정교한 프레임워크 안에서 이루어진다. 상대방은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비단 협상 테이블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의 다양한 관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자녀에게 스스로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부모의 교육 방식, 동료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할 기회를 주어 주인의식을 북돋는 리더의 모습, 혹은 데이트에서 상대방에게 다음 약속 장소를 정하게 함으로써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주는 인상을 주는 것은 단순히 상대를 조종하려는 술수가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그들이 스스로 결정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관계를 더욱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드는 지혜로운 방법이다. 이는 상대방의 저항감을 줄이고, 협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을 높인다.
결론적으로, "연락 주십시오"라는 인사말이나 크리스토퍼 보스의 협상 전략처럼,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주는 역설적인 지혜는 강력한 소통 도구가 된다. 이는 겉으로는 상대방을 앞세우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황을 통찰하고 관계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깊이 있는 이해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더 나은 관계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