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자들이 군대 얘기를 시작하면 축구와 가혹했던 얼차려, 혹은 고된 훈련 얘기로 시작하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정의숙 소령님과의 추억으로 시작하게 된다. 체구는 작았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누구보다 컸던 분. 바로 2000년대 초반, 국군부산병원에서 나를 이끌었던 정의숙 소령님이시다. 당시 상병과 병장으로서 14개월을 함께하며, 의무병이었던 나에게 그분은 단순히 계급 높은 상관이 아니라, 당당한 태도와 카리스마로 휘하 간호장교들을 이끄는 모습 자체가 깊은 존경심을 심어주었던, 내가 우러러보던 장교였다. 나는 그분의 마음에 들고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일했고, 그분과 함께 일하는 시간은 늘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즐겁게 군 생활을 했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분과의 즐거웠던 시간들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매주 간호장교 회의 때마다 당시 14,000원 정도이던 병장 월급을 털어 PX에서 산 초코파이를 냉커피와 함께 넣어드리고, 그분의 마음에 들고자 했던 나의 순수한 노력이었다. 이 소중한 경험은 전역 후에도 이어져, 2006년 존슨앤드존슨메디칼 영업직 신입사원 면접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했고, Cordis 사업부 1등으로 입사하는 값진 결실을 맺기도 했다. 그분과의 인연은 그렇게 군 복무를 넘어 나의 사회생활까지 영향을 미쳤다. 4년이 흘러 나의 결혼식에 초대한 것을 흔쾌히 수락해주시고, 하객으로 참석해주셨던 그 모습이 엊그제 같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1년 뒤,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 나의 아내와 첫아이를 데리고 그분이 당시 근무하시던 국군수도병원을 찾아뵈었다. 군복을 벗은 나에게도 변함없이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셨던 그 모습에서 나는 깊은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6년이 흐른 지금, 문득 그분의 소식이 궁금해져 인터넷을 검색했다. 놀랍게도 소령이었던 그분은 어느새 별 하나를 단 장군, 준장이 되어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직을 수행하셨고, 그 길을 명예롭게 마무리하신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분의 리더십은 단단한 군인의 마초성과 따뜻한 여성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마초성이 팽배하던 군무대에서 특유의 여성적 부드러움으로 장교들과의 마찰이나 갈등을 능숙하게 조정하시던 모습은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각인되어 있다. 그분의 헌신과 노력이 만들어낸 빛나는 발자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분의 가족이었다. 부군께서는 3사관학교 출신 대령으로, 따님은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한 중위로, 그리고 아들까지 3사관학교 출신 소위로 복무하고 계셨다. 한 가정이 군에 바치는 헌신과 봉사는 정말 경이로울 뿐이다.
정의숙 준장님께서 이제 교장직을 마치시고 새로운 길을 걷고 계시며, 아직 현역이란 소식에, 나는 그 시절의 감사함과 지금의 존경심을 담아 이 글을 쓴다. 한때 나의 상관이었고, 이제는 이 나라 군의 위대한 리더이자 명문 군인 가문을 일군 분으로서, 정의숙 준장님은 나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분의 다음 행보에 무궁한 영광과 행복이 함께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