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느 순간, 낯선 공간에서 들었던 단어가 시간이 흘러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다시 들려오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내게는 'racist'라는 단어가 그러하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던 곳은 재판장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그 단어는 두 딸의 사소한 말다툼 속에서 터져 나왔다. 같은 단어였지만 그 무게와 의미는 너무나 달랐다.
10년 전, 뉴욕 퀸즈 주 대법원 재판장의 공기는 무겁고도 날카로웠다. 교통사고 피해자인 한국인 원고는 위증과 부적절한 태도로 배심원의 신뢰를 잃고 있었다. 그의 외모는 주름진 얼굴과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인해 고단한 삶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반면 피고인 측 변호인은 그 피고측 증인 (여성)의 단정하고 신뢰감 있는 태도를 무기로 재판을 주도해 가고 있었다. 재판의 흐름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기울자, 원고 측 변호인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상대방 변호사를 향해 외쳤다. "You are a racist!" 법정의 엄숙한 침묵을 깨고 터져 나온 이 단어는, 불리한 상황을 뒤집으려는 절박한 심정이 담긴, 하나의 무기였다. 이 단어는 당시의 재판 분위기와 피해자의 인종적 배경을 엮어 배심원들의 감정에 호소하려는 강력한 시도였다. 그 단어는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재판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치명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10년 후, 그 단어는 가정집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다시 울려 퍼졌다. 셋째 딸은 둘째 딸과 사소한 시비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You are a racist"라고 소리쳤다. 사춘기 자매의 흔한 다툼이었다. 그 순간, 나는 10년 전 법정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법정에서 들었던 그 단어의 무거움과, 딸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의 가벼움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딸에게 그 단어는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담은 표현이라기보다, 단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강력한 비속어에 불과해 보였다. 의미를 모른 채 흉내 낸 말, 혹은 감정을 과하게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경험은 우리 사회가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법정에서 'racist'라는 단어는 그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인종차별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제기하며, 불의를 바로잡으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딸들의 말다툼에서 그 단어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단순히 상대를 비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이처럼 심각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그 본래의 힘과 무게를 잃어버리는 현상을 목격한다.
이것은 언어의 퇴화인가, 아니면 새로운 언어 습관의 형성인가? 무엇이든, 이 현상은 우리가 단어를 얼마나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킨다. 법정에서와 같이 단어의 무게가 필요할 때, 그 단어의 힘이 약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단어의 본질적인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