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현실에서, 예측 가능한 세계로

한번 봤던 드라마나 영화를 반복 시청하는 이유

by 뉴욕 산재변호사

나는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Mindhunter를 반복해 시청한다. 단순히 흥미를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결말을 아는 이야기를 다시 찾아가는 이 행위 속에는,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어떤 심리적 욕망이 숨어 있다. 그것은 곧 예측 가능한 세계에 몸을 맡기려는 욕망, 즉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을 잠시 유예하고 싶은 충동이다.


현실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은 우연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주 무력해진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인간의 삶은 통제할 수 없는 맹목적인 '의지(Wille)'에 휘둘리는 고통의 연속이다. 우리는 내일조차 확신할 수 없으며, 타인의 말과 행동조차 끝내 예측하지 못한다. 이 불확실성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동시에, 끊임없는 불안을 낳는 근원이다.


그러나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드라마 속 세계는 다르다. 인물들의 대사, 사건의 전개, 이야기의 귀결은 모두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 안에서는 어떠한 변수도 개입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으며, 나는 그 예정의 질서를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세계 속에서만큼은 나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전지적 관찰자가 된다. “적어도 여기서는 된다”는 감각, 그것이 내가 반복 시청을 통해 얻는 위안이다.


특히 Mindhunter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프로파일러들은 범죄자의 언어와 행동 속에서 패턴을 읽어내고, 무의미한 폭력의 잔해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인간이 혼돈에 맞서 질서를 세우려는 원초적 시도의 은유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현실에서 흔들리는 나의 내면 또한 잠시 질서를 회복하는 듯한 체험을 한다.


이러한 '전지적 관찰자'의 감각은 단순히 드라마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신경언어 프로그래밍(NLP) 기법 중 하나는 바로 이 원리를 현실에 적용한다. 마치 처음 탔을 때는 공포에 질리지만, 한번 경험하고 나면 더 여유롭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롤러코스터처럼, 삶이라는 영화 또한 이미 긍정적인 결말을 맞았다고 '확언'하는 것이다. 이것은 낙관적인 망상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느끼는 불안을 덜어내고, 현재의 과정을 더 능동적으로 즐기게 만드는 심리적 장치다. 우리가 이미 본 영화의 클라이맥스 순간을 편안하게 지켜보듯, 삶의 중요한 순간들도 이미 좋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믿음 속에서 더 담대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내가 다시보기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단순한 오락의 반복이 아니라, 혼돈의 현실에서 질서의 세계를 경험하고, 나아가 현실에서도 긍정적 결말을 확언하는 훈련이다. 드라마 속에서 나는 무력한 개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예견하는 자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예견의 안정 속에서, 나는 다시금 현실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영화를 온전히 살아낼 힘을 얻는다.

keyword
이전 24화헐크호건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