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자아의 죽음과 새로운 탄생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만든다고 믿는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소유하고, 더 인정받을수록 삶이 단단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상과 종교는 정반대의 길을 제시한다. ‘더 쌓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을 통해 더 본질적인 자기 자신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동양 철학의 대표적인 사상가 장자(莊子)의 ‘오상아(吾喪我)’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의식인 세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두 전통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에서 태어났지만, 모두 인간에게 “옛 자아의 죽음과 새로운 탄생”이라는 동일한 메시지를 건넨다.
장자의 “오상아”는 글자 그대로 “나는 나를 장사지냈다”는 뜻이다. 여기서 장사지내 버린 ‘나’란 욕망, 체면, 평가, 집착과 분별로 만들어진 작은 자아이다. 사람들은 늘 비교하고 판단하고 증명하며 산다. 그러나 장자는 그러한 자아가 오히려 인간을 속박한다고 보았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불행하고, 얻고 잃는 문제 때문에 흔들리고, 옳고 그름에 집착할수록 마음은 더 혼란스러워진다. 장자는 이 모든 집착을 버리고 자연에 몸을 맡길 때, 인간은 비로소 참된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내’가 만든 ‘가짜 나’를 잃어버릴 때, 더 큰 존재인 ‘참된 나’가 새롭게 나타난다. 오상아는 작은 자아의 해체와, 자연과 하나 된 큰 자아의 회복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세례 역시 ‘옛 사람의 죽음’이라는 상징을 지닌다. 성경은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세례는 단순히 종교적 의례가 아니라, “나는 이제 죄의 지배를 받는 옛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는 고백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사건이다. 오상아가 인간의 깨달음과 실천을 통해 낡은 자아를 버리는 것이라면, 세례는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라는 점에서, 새 자아는 자연이 아닌 인격적 하나님과 관계 맺는 자아로 재정립된다.
두 사상은 공통점이 있다. 장자는 욕망, 집착, 분별을 버릴 때 참된 자유와 평화를 얻는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자유가 온다고 말한다. 비움 뒤에 오는 자유, 버림 뒤에 오는 새 삶. 인간이 스스로 만든 허위의 자아를 내려놓는다는 의미에서 둘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그러나 두 전통은 결정적인 지점에서 갈라진다. 장자는 인간 안에 이미 참된 자아가 존재한다고 보며, 세상에 대한 집착만 걷어내면 본래의 자유로운 존재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반면 기독교는 인간 안에 스스로 구원을 만들어 낼 선한 본질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져야 하며, ‘참된 나’는 자연 속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한쪽은 내 안의 본래성을 찾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받는 길이다.
결국 두 개념은 이렇게 요약된다.
장자는 “나는 옛 나를 장사지내고, 우주와 하나 되어 자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나는 옛 나를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삶의 본질은 쌓는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비워야 보이는 것이 있고, 내려놓아야 비로소 얻는 것이 있다. 장자의 오상아와 기독교의 세례는 서로 다른 세계관 속에서 동일한 진리를 외친다. “낡은 자아를 버려라, 그러면 새로운 생명이 열린다.” 그 길은 방식도, 목표도 서로 다르지만, 인간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향해 걸어가려는 공통된 갈망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질문 자체가 중요하다.
나는 무엇을 버려야, 새로운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