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아침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간을 '삶' 그 자체로 여긴다. 활동과 생산성, 성취는 생명력의 증거로 칭송받는 반면, 잠이나 휴식은 그저 활동을 위한 재충전, 혹은 때로는 게으름이라는 이름의 '삶의 공백'으로 치부된다. 마치 깨어 있는 시간만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잠은 잠시 동안 죽음에 가까운 무의 상태로 들어가는 의무적인 통행료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자와 호랑이와 같은 야생의 왕자들을 관찰할 때,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가치관은 흥미로운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야생의 사자와 호랑이는 하루 24시간 중 무려 16시간에서 20시간을 휴식과 수면에 할애한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역동적인 사냥의 순간은 그들의 삶 전체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들의 디폴트 값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멈춰 있는 것,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은 배고픔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필요에 의해서 촉발된, '잠시의 활동'이다. 즉, 그들의 삶은 휴식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사냥 (즉, "일")은 심심하거나 배가 고플 때 나서는 부수적인 행위에 가깝다. 이 사자의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휴식을 '예외'로, 일을 '기본'으로 설정했는가?"
이러한 가치관은 사실 근대 산업 사회의 생산성 위주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측정되며, 멈춰 있는 것은 곧 뒤처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명제 아래, 쉼표 없는 삶은 성실함과 성공의 훈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활동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망각하고, 활동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함정에 빠졌다. 마치 태엽이 풀릴 때까지 쉬지 않고 움직이는 시계처럼, 우리는 스스로를 소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휴식과 잠은 단순한 에너지 보충이 아닌, 생명 유지와 성장의 본질적인 과정이다. 수면은 뇌가 정보를 통합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창의적인 통찰을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활동 시간이다. 몸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내면의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사자가 긴 휴식 끝에 일어났을 때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사냥을 할 수 있듯이, 우리에게도 '쉼'이라는 디폴트 상태가 보장되어야만, 우리가 추구하는 '일'과 '활동'이 비로소 의미 있고 높은 품질을 가질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삶의 디폴트 값을 재설정할 때다. 휴식을 단순한 '일의 부재'가 아닌, 우리의 존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기본값'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일은 이 기본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배고픔과 같이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한 선택적이고 역동적인 행위로 여겨야 한다. 잠을 죽음과 동격으로 여기는 대신, 삶의 가장 깊고 풍요로운 회복의 시간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활동 시간 또한 소진이 아닌 진정한 몰입과 기쁨으로 채워질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가 배고플 때 사냥을 나서듯, 우리도 내면의 충동과 필요에 의해 가장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