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진정성을 묻는다는 것

by 뉴욕 산재변호사

정치인들의 논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서로의 주장이나 정책을 두고 격론을 벌이다가,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말한다.


“그건 진정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 말은 곧 강한 도덕적 의심을 내포한다. 정책의 내용이 아니라 그 정책을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을 문제 삼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누구도 “진정성”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는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굳이 정의해보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나 주장 뒤에 감춰진, 겉으로 드러난 바와 상충하지 않는 내면의 일관된 의도"


즉, 어떤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말의 진짜 목적이 말 그대로인가 아니면 다른 숨은 계산이나 목적이 있는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 사람의 마음속을 누가 들여다볼 수 있는가? 상대의 진정성을 문제 삼는 순간, 정책의 합리성이나 제도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이러한 담론 구조에 일찍부터 비판적이었다. 그는 토론 상대가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하면, 곧장 이렇게 반박하곤 했다.


“어떤 정책에 있어 진정성을 묻지 마세요. 그 정책이 합리적인가, 헌법에 부합하는가를 물어야지. 히틀러는 진정성이 없어서 그렇게 많은 유태인들을 학살했을까요? 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데모하던 학생들을 때려잡던 경찰관들이 진정성이 없었을 것 같습니까?”


그의 말은 불편할 수 있지만, 정곡을 찌른다. 진정성이 있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진정성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그릇된 것도 아니다.


정책은 마음이 아니라 구조로 평가해야 한다. 정치에서 중요한 건 동기나 감정의 진실성이 아니라, 그 정책이 헌법적 가치와 부합하는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증진시키는가, 사회 전체에 실질적인 효과를 주는가이다.


물론 정치인은 신뢰를 받기 위해 진정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행동의 일관성과 결과로 증명되는 것이지, 상대방의 내면을 미리 해석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결국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은 철학적, 윤리적 비판이 아니라 상대의 말 자체를 무효화시키기 위한 수사적 도구가 될 위험이 있다. 그 순간부터 대화는 논쟁이 아니라, 심리전으로 변질된다.


진정성은 판단의 근거가 아니라, 살아낸 결과다. 우리는 정책의 내용과 제도의 구조, 법률의 취지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정치의 무게 중심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사회의 원칙에 놓일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진정한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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