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본질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영상, 그리고 글

by 뉴욕 산재변호사

우리는 **‘지우는 세상’**에 익숙하다. 잘못 쓴 글은 지우개로 지우고, 실수한 말은 웃음으로 덮는다. 누군가에게 미안했던 감정도, 오래전의 부끄러움도 ‘시간’이라는 강물에 흘려보내며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축복이다.” 만약 망각이 없었다면, 실수 많고 서툴렀던 나는 오늘을 온전히 견딜 수 있었을까.


그런데 디지털은 다르다. 디지털 세계는 한 번 남긴 흔적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세계’**다. 얼마 전, 한 클라이언트와 통화 중에 그가 내 유튜브 채널에서 ‘workers' compensation’ 관련 영상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한동안 그 채널을 신경 쓰지 않았고, 잊고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은 잊지 않았다. 영상은 여전히 떠 있었고,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휴대폰에 저장된 7초짜리 영상, 댓글창에 툭 던진 말 한마디, 가볍게 누른 ‘좋아요’ 하나조차도 디지털은 기록한다. 서버 어딘가에 저장된 정보는 우리가 잊은 뒤에도, 삭제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인터넷은 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디지털은 무섭다. 그리고 동시에 정직하다. 순간의 분노로 쓴 악플, 자랑하고 싶어 올린 게시물, 무심코 남긴 조롱 섞인 영상은 마치 디지털 타임캡슐처럼 저장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은 비판과 후회의 화살이 되어 우리를 향해 되돌아온다. 디지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낱낱이 보여주는 거울이자 증거다.


하지만 디지털이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댓글, 진심을 담은 글, 용기 있게 올린 진실의 영상은 오히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린다. SNS를 통해 퍼지는 한 줄의 위로, 진심 어린 고백, 외로운 누군가를 살린 작은 말 한마디는 오래도록 기억되고, 또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기억은 때로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지금 남기고 있는 디지털의 흔적은 어떤가? 눈앞의 순간만을 위한 말인가, 아니면 시간이 흘러도 부끄럽지 않을 나의 자화상인가?"


디지털은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은 결국 사람을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더 신중해야 한다. 타인을 대할 때도, 스스로를 표현할 때도. 디지털의 본질은 삭제가 아니라 축적이며, 망각이 아니라 기억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 글자를 온라인에 남기는 행위조차 조심스러운 이유다. 그 글은 오늘을 지나, 내일의 나를 말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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