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부담을 덜어주는 사람들

by 뉴욕 산재변호사

내가 섬기는 우리 교회 박 목사님이 어느 날 유쾌한 농담을 건네셨다.


"박 집사님하고 제가 요즘 살을 좀 빼서요, 지구의 부담을 덜어줬지요."


모두가 웃지만, 나는 그 말에 오래 머물게 된다 지구의 질량은 약 600만 조 조 킬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둘이 몸무게를 좀 뺐다한들 지구의 질량 감소에 일조했을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지구의 부담을 덜어주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선, 존재의 무게에 대한 신학적 물음을 품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무게를 지닌 존재다. 단지 육체의 무게만이 아니라, 감정의 무게, 기억의 무게, 죄의 무게, 그리고 무엇보다 존재의 무게. 창세기에서 아담은 흙에서 지음받았고, 그 흙은 곧 무게다. 타락 이후 그 무게는 더 무거워졌고,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을 더욱 땅에 붙들어 매는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무거운 짐을 진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그분은 단지 우리를 위로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안의 무게를 나누시고, 나아가 그것을 대신 지시는 분이다. 그분의 십자가는 인류 전체의 무게가 실린 나무였다.


그렇다면 신앙이란, 단순히 무게를 감내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무게를 나누고 줄여주는 삶의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몸무게를 줄인다는 사소한 결심조차, “지구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로 해석되는 공동체, 그곳에서 우리는 신앙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다.


실제로 교회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삶의 실패, 관계의 상처, 육신의 고통, 불확실한 미래—이 모든 것이 교회의 의자 위에 앉아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무거움이 서로의 어깨 위에서 분산될 때, 우리는 비로소 가벼움을 경험하게 된다. 성령은 바람이시고, 그분이 임재하실 때 우리 안의 숨결은 가벼워진다. 진정한 공동체란 바로 그런 성령의 숨결 위에서 서로를 붙들고 있는 존재들이다.


무게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만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그 중심이 공동체 안으로 옮겨졌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혼자의 무게로 지탱하지 않는다. 교회는 바로 그 중심 이동의 공간이다. 고립된 자아에서, 연대하는 몸으로. 무거운 존재에서, 함께 가벼워지는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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