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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im Apr 26. 2023

The silence

침묵이 답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나 때는 혹은 예전에 라는 말이다. 그만큼 시간 안에서

많은 일들을 겪었고 살아냈다는 스스로에 대한자부심들이 어느덧 자신 안에 틀을 만들고. 성격을 만들고 노하우를 쌓았다는 뿌듯함,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떤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상황에  기억속일들을 접목시켜서 이야기하게 되는 거다.

그런 행동과 말투를 젊은 세대들은 노땅이라 말하기도 하고, 무시를 하거나 말을 잘라먹기도 한다.

하늘은 무심한 듯 공평하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나이 먹게 하는 시간을 만들어놓았으니

지금 10대라고 십 년 후도 십 대는. 아닐 거고 , 지금이 20대도 십 년 후에는 삼십 대가 되는  시간의 굴레가

모든 인간에게 내려준 형벌일 수도 축복일 수도 있는 거다


나의 삽십대는 죽을 만큼 온몸에 힘을 주고 앞만 보며 달리는 장거리선수였다

인생이란 가혹한 트랙에 놓이고, 결혼 이혼 직장 홀로서기 인내 버팀이라는 장애물들이 앞에 놓이고 보니

때로는 무거운 말들로 나를 방패 삼고 때론 당당함이라는 칼로 찌르며 하나 둘 장애물을 넘겼고,

그런 시간 안에서 내 안엔 무시라는 굳은살이 자랐고 어떤  환경의 장애물이든  깊은숨 한번 들이쉬며

버티며 살아 낸 나인 것이다


인생에 연습이 있던가? 맞은 곳을 또 맞았다고 아픈 게 덜 아픈가? 상처는 상처일 뿐 결코, 그 상처에 익숙하지지 않기에

 또 다른 장애물이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놓일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지만, 경험이라는 조금은  예습된

지식을 쌓았기에  대처 또한 처음과 달리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이끌거나. 대화로써 이해심을 구걸하기도

하고, 직접이 아닌 돌려 말하는 화법까지 많은 방법을 터득해 나가며 나아진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는 거다


인간관계가 1+1처럼 명확한 공식이 존재하지 않듯 각자의 위치에 환경 혹은  배경까지 더해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미궁 속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치만 나이를  먹어간다고 그런 일

또한 익숙하게  처리한다는 거 어렵기는 매한가지, 특히나 그 문제가 가족끼리 얽히고  설힌 문제라면 더더욱  

문제에 대한 방법을 찾기 쉽지 않다. 가족이 핏줄로 연결된 단단할 거라는 건 편견이리라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가족이냐가 주된 물음이 돼야 하고 내 가족은 서로 아끼고 이해해 준다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축복받은 가정에서 태어난 거다. 남보다 못한 가족을 둔 사람들이 의외로 많으니 말이다

남보다 못한 가족은 어떤 가족? 친한 관계라 하면 한 번씩 전화도 하고 밥도 먹고 모 그런??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안 거나 하면 문자로  안부를 물어주는 관계 이런 관계를 우리는 지인 또는 친구라고 말하는데

가족이 이런 지인이나 친구보다 못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거다.


내 부모님은 딸 셋만 남겨두시고 하늘로 가신지 엄마는 30년 아빠는 10년이 넘어간다.

이제 우리 세 자매도  다들 나이가 들어 내가 오십 중반  바로 아래동생이 오십 초반 우리 막내가.

딱 쉰이 됐다. 딸만 셋이라 자라면서는 공유할 것도 많았고 이야기도 잘 통했으며 서로 옷 취향들도 비슷해

옷을 서로 바꿔 입거나 같이 입거나하며 자랐다. 우리는 정말 친한 자매로 평생 늙어갈 거라 착각했었다

하지만 스물이 넘어가고 각자 인생운동장이 들어서면서 어릴 때 그토록 서로에게 거리낌 없던  세 자매도

자녀교육문제, 결혼, 남편갈등 이혼 재혼등에 풍파와 장애물들을 만나며 점점 서로를 향하던 그 마음도 잊어갔다


서로 대화하는 방법이 달라져갔고, 점점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마음이 변했으며, 어떤 문제에서도  주권적 관점을 말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본인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말  꼬리를 물고 늘어지거나 ,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리고, 오래된 일들을 들추어내며. 자신이 온전히 피해자를 본 것 마냥 다른 형제의 마음 같은 건 아랑 곧 하지 않는

그러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통화가 한 달 두 달 육 개월 점점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만큼 통화나 문자 횟수도 줄어들었고

균열을 우리 셋 모두 다 느낄 정도의 어색함까지 만들어졌다


우리 부모님이 딸 셋을 남겼으니 다행이지 만약 다른 사람들처럼 형제가 많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곤 했다

왜 이런 모진 말로 동생에게 상처를 준건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고. 혹 조울증인가 우울증이 걸렸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었다. 그러나 결론은. 주위환경이 가장 큰 요인일 거라. 추측해 본다. 우리세 자매가 함께 자랄 땐

우리는 서로에게 공감할부분도 많았었고, 함께할 시간도 많아서 서로를 이해시켜야 하는 과정이 필요치 않았었다

성장하며 성격을 이루는 과정을 거치고, 결혼정년기에 결혼으로  새로운 가정을 이루며 주관적이 견해가 필요했을 데고  

적응기가 필요했을 때고, 그 모든 시간을 우리와 공유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았을게다. 모든 걸 말하기엔 자존심이란

장애물이 걸렸을 거고 혹은 이런 말을 하면? 이란 쓸데없는 오해의 선입견도 작용했을 것이다


많은 생각을 했었겠지 힘들었겠지 막연한 생각으로 우리 세 자매를 단정 짓기는 힘든 부분이 있으나. 주위의

다른 형제들을 같이 보면, 우리 자매들이 정상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각자의 성격이나 말투를 말하기엔 이해를 시키는 그 마음을 ,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고. 가족이고 핏줄이라는 보이지 않게 묶여있는 그 틀조차도 산산이무서져 버릴 수 있다는 걸 서로가

알기에 우리는 침묵이라는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침묵함으로 생각까지 멈춰지는 것도 아니고 침묵하며 생각하는 그 형제는 형제의 관계 의미가

깨진 지  오래라는 걸 알고 있지만 , 그래도 그런 관계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놓은 우리셋

남보다 못한 관계일 찌언정 형제라는 틀은 지키고 싶기에 침묵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억장이 무너지고 무엇 때문에 우리가 서로에게 침묵해야 하는 사이가 된 건지

알 수 없으나. 마지막 바람은 차가워지고 매몰차진 동생이. 아무꺼림낌없이 같이 모든걸공유했었던

우리의 예전 모습을 가끔이라도 되돌아봐주길 잠시만이라도 어릴 적 우리의 시간을 생각하며 추억해 주길.

조용히 침묵 속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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