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갈 곳이 없는 나

by 송영희

안개에 지문이 있는 사람은

매일 출근 도장을 길 위에 찍는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데 온종일 걷는다

이 도시는 한 해가 다 가도록 안개가 걷히지 않고

할 일 없이 계절이 탕진된다

구부러진 하루하루

가슴을 적시는 물 한 잔에 목이 메고

스쳐 지나간 나무마다 서러움을 매달았다


실업이라는 단어가 종일 소음으로 들락거리고

갈 곳 없는 나는 공원길에 나를 버렸다

대낮을 걷는 시간이 밤처럼 어두웠고

노을에 누운 그림자

삭아진 꿈을 세워 보지만

햇살의 무게마저 어깨가 무거웠다


똑같은 돌인 줄 알았는데

나는 누군가가 걷어찬 돌멩이였다

구르는 돌을 보는 것은 내 기록을 보는 일

충혈된 허공을 붙들고

사라진 방향에 쉴 새 없이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봄의 무게가 늘 평행이듯

날개도 어긋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둠으로 버틴 시간 도시는 구겨지고

이력서에는

아직 발이 시리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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