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플라스틱 안경이 뭐라고

늘 사기를 당하는 남편

by 송영희



오늘은 화가 나가 글이 제대로 써지지도 않는다.

늘 사기를 당하는 남편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남에게 사기를 당할 때가 많다.

구멍이 송송난 검정 플라스틱 안경을 사가지고 와

눈을 안정시키고 계속 쓰고 있으면

눈이 좋아진다고 했다.

나는 호기심에 안경을 써 보았다.

작은 구멍사이로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그냥 보는 그대로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뚫린 플라스틱 안경이었다.

나는 애들 장난감을 사 왔네

누구 줄사람 있냐고 되묻자.

우리 둘의 시력을 위해서 사 왔다고 한다.

어이가 없어서

" 지금 장난해."

" 아냐 그 안경을 파는 사람이

그 안경 오래 쓰고 있으면 정말 눈이

좋아진다고 했어."

" 그래 얼마 주었는데."

" 27만 원."

" 당신 바보야. 이 플라스틱 안경을

27만 원이나 주었다고."

어이없고 화도 나고 남편이 바보로 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3천 원이면 딱 맞는 가격이다.

반품을 할 수 있냐고 묻자

가게에서 산 것이 아니고

사무실에 갖고 온 사람에게 샀단다.

요즘도 그런 물건을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고 명함은 받았냐고 하니까

명함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다음에 주기로 했단다.

" 전형적인 사기꾼이네."

" 하기야 007 가방에 넣고 다니면

누군들 알겠어. 경비들도 잡기 힘들지."

" 어쨌거나 결론은 또 사기를 당하셨군요. "

" 남의 말을 그렇게 잘 믿으니 당신은

사기꾼의 봉이야 봉이라고."

나는 남편을 채근하고 또 채근했다.

" 당신 회사에 가서 CCTV 보고

그 사기꾼 잡아서 경찰서에 넘길 거야, "

내가 잔소리하거나 말거나

남편은 그 사기꾼 말을 철석같이 믿고 보란 듯이

플라스틱 안경을 쓰고 있는데

딱 5살짜리 사내아이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자꾸 말하면 싸우게 되니 그냥 묵언할 수밖에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남편이 눈이 좋아졌다고 하면

나도 써 봐야지 마음에 새기는 것은

또 무슨 심보 일까?

어쩜 나도 남편을 닮아 가는 것은 아닌지.

하나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

바보 같은 남편을 보고 있자니 분통이 터졌다.

요즘은 AI 시대인데 70년 아날로그 시대를

살고 있으니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남편 옆을 지날 때마다

" 아! 난 바보처럼 살아군요."

노래를 읊조렸다.

자기를 비아양거리면서 노래를 부르는데도

아는지 모르는지

" 바보처럼 안 살면 되잖아."

나에게 말한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내보냈다.

품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가슴에 불이 붙을 것 같기에

얼음물 한 사발로 가슴을 식혔다.

사기를 치는 것보다

사기를 당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젖은 마음이

조금씩 마르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눈물 삼킨 도마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