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영희 Dec 05. 2023

치매

머릿속 지우개



방문을 들어서자

줌마 누구요.?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의 밑단을 잘라내

예전의 엄마를 찾고 싶었다


육십이 넘어 한글을 깨치고

이름 석자 벽에 붙여 놓고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이름과 나이 주소가 적힌 종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두 아이를 앞세우고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 속에

풀잎처럼 휘청이던 목숨 

그녀의 머릿속에 지우개를

너무 많이 넣은 것은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목숨처럼 아끼던 딸이 아줌마가 되어서야

그녀의 눈에 눈물이 멈췄다

낙화가 흩날리던 봄날

그녀의 죽음 앞에

커다랗게 쓴 이름 석자

가슴에 넣어 주었다


기억해 줘  내 이름


가슴에 붉은 흔적

아직도 화상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다

한 번이라도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음 했는데

내 이름을 기억하는 것조차

너무 큰 고통이 짓누르고 있어서

모두 머릿속을 지우개로 지웠나 보다

오빠는 교통사고

큰언니는 악성 유방암으로

두 자식을 앞세우고

나도 데리고 가라고

신께 비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허공에 떠있는 몸을 가라앉히는 데는

아 있는 세자식이 있어서 그나마

중력 속에 살 수 있었지만

정신은 하늘에 올려 보내고

빈 껍데기만 남아

나를 아줌마로 안 채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가슴 아픈 엄마의 생을 어루만지며

저승에서는

편안하고 안락한 생이기를 기도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시누이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