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전복은 물의 피부를 갖고 있었지
전복
by
송영희
May 27. 2024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눅눅한 습기를 안 은채
이게 뭔가 했어
그런데 목이 없고 발도 없었어
뒤집어 보니 일어날 수 없는 것은
거북이와 같았지
너의 몸에 손가락을 대자
불안한 듯 온몸을 움츠렸지
모습이 징그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며
죽음을 세고 있는 것
같았지
살아 있는 너를 손질하며
비릿한 물의 피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다시 돌아가지 못할 고향
슬픔을 게워내며
칼끝에서 너의 맥박소리 들려오고
딸려온 물빛마저 거무스름했지
등껍질이 해체되면
질펀하게 쏟아놓은 설움을
등딱지에 가두고서
너는 한동안 난청을 앓았지
도마 위에 올려진
너는
온몸을 감싸준 물의 혀를
생각하며
눈을 감고
나는
작게 쪼개진 바다를 바라보며
눈을 감지
keyword
전복
피부
죽음
22
댓글
4
댓글
4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송영희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제가 써 놓은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세상은 거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지만 저는 그 사이에 숨겨진 작은 순간 들을 사랑합니다.
구독자
260
구독
작가의 이전글
내 이름은 씨발년이었다
남편의 발이 가장 예뻤다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