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를 죽이다

어릴 적 꿈

by 송영희



어릴 적 장기자랑이 있던 날

나는 춤을 추고 상으로 주전자를 받았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발레리나가 되었다


시름시름 앓는 엄마는 헛된 꿈이라고

거친 말을 내뱉었고

나는 나를 예쁘게 포장하고 싶었다


물기 먹은 가난은 검은 그늘 막에 갇히고

막다른 골목이 나를 조여 왔다

가난의 틈새에서

계산될 수 없는 꿈의 거리를 재며

발레리나를 죽였다


젖은 날개는 그늘을 등에 지고

기댈 곳 없는 미움이 웃자랐다

수많은 간이역을 거치면서 형편이 나아지자

아직 떨이하지 못한 반백년 꿈이

가끔씩 몸 밖으로 뛰쳐나와 날고 있다


더듬거리는 발목이 허방을 짚어도

빙글빙글 도는 꼭짓점은 늘 즐거웠다

태엽을 돌리면

느릿느릿 몸속을 흘러 다니는

죽였지만 살아있는 발레리나

곳곳에 숨어 있는 모래수렁처럼

차이코프스키 음악이 흐르면

또다시 내 몸을 통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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