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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Jul 18. 2021

반닫이

할머니의 음성

몇 시간째 반닫이 옆에 구겨진 할머니

한숨이 주름진 허공에 쏟아져 내렸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버지가 만들어 준 건데

새집으로  가져갈 수 없다고 맡아  달란다

안방에 들이고 보니

검은 땟자국이  해묵은 이야기가 녹아내리고

나뭇결에는 할머니의 온기가 묻어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5만 원에 사라고 왔다

팔아야 잊어버릴 것 같다고

낮고 차분한 음성은 소리 없는 비명 같았다

상처 난 가슴을 꿰맬 수 없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부고장과 함께 5만 원이 되돌아오던 날

밀랍처럼 굳은 몸에서 내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할머니 뒷모습도 어깨도

너무 멀리 보여 눈을 감는데

반닫이 쪽문이 열릴 때마다 핏물처럼 고이는 목소리

잘 쓰구려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이 사방으로 번졌다

반닫이는 할머니의 아버지였다



시작노트


  20년 전 80 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큰 궤짝 옆에 달싹 붙어있었다 2시간이 지났는데도 할머니는 그 궤짝을 떠날 줄을 몰랐다

  2층에서 내려다본  나는 답답해서 내려가 물었다

  할머니 누구 기다리세요

  할머니는 초췌한  모습으로 엉뚱한 말을 했다

  새댁 이것 좀 맡아줘

  자세히 보니 아주 오래된 반닫이였다

  자기가 시집올 때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주신 거라고

했지만  내가 보아도 새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며느리가 새집으로 이사 가면서 분리수거장에 내놓았는데

나는 여기에다 놓고 갈 수 없으니 새댁이 맡아 주면 안 되냐고  묻는다

  할머니의  눈예는 눈물이 글썽거렸고  목소리는 가랑잎만큼이나 힘이 없었다  나는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 주소와 위치를 몇 번 알려주었다  그때서야 내 손을 잡고서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몇 번을 뒤돌아보며  떠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마치 병든 아버지를 두고 가는 것처럼 불안해했다

며칠이 지난 후에  할머니 가 우리 집에 왔다 반닫이를  찾으러 왔나 했는데 그 반닫이를 가져갈 수 없으니  나보고 사라고 했다  소중한 물건이라 팔고 싶지는 않지만,  팔아야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 얼마를 드리면 되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3만 원만 달라고 했다  나는 2만 원은 용돈 이라며 할머니   손에 5만 원을  쥐어  주었다

할머니는  한참 동안 반닫이를 만지작거리더니  잘 쓰라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할머니가 가시고 8 개월이 지났을까  우리 집에 등기가 왔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었다  띁어보니

ㆍ내 궤짝 잘 부탁해요ㆍ

  할머니의 삐툴삐툴한 글씨와 함께 돈 5만 원이 들어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와 어머니께서 5만 원을 돌려드리라는 유언을 남겼다면서  아들이 부친 편지였다

  편지를 반닫이  위에 올려놓은 내 몸은 밀랍처럼 굳어져 버렸고 흐르는 눈물은 반닫이  위에 떨어졌다

그러자 반닫이는 나에게 말을 건다

ㆍ 잘 부탁해요ㆍ

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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