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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2월 2일 제설

by 마법사

밤새 내린 눈이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다.

아침부터 안전화를 신고 출근했다.
발이 시렸다.
지난가을에 다친 허리 때문에
눈만 보면 몸이 먼저 긴장한다.

역시나 교대자는 이미 대로의 눈을 밀어 놓았다.
제설 오토바이가 지나간 흔적이 선명했다.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났다고 했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
제설차로 대로를 치우고
블로워로 인도에 길을 냈다고 했다.

내가 당직을 선 날이었다면
그 몫은 내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갈등한다.
당직실을 비우고 나가
눈을 치우는 것이 맞는 일인지.

잠을 자다 깨는 일도 그렇고
눈을 치우는 동안
혹시 울릴지 모를 비상 호출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도 그렇다.

교대자는
눈을 치우는 일에 유난히 진심이었다.
눈을 치우지 않으면
아침에 들려올 말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밤에 눈을 치우는 일은
불합리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직원이 말했다.

당직자가 눈을 치우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감시와 단속을 맡는 직무라면
그 정도는 포함되는 것 아니냐고.

왠지 서글펐다.

일근직을 향한
당직 근무자의 희망은
이런 것들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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