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공익과 사익의 공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늘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왼쪽에는 급기 댐퍼 중앙에는 비상계단,
오른쪽에는 소화전.
그리고 그 사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장치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화문은 화재가 나면 스스로 닫히고,
급기댐퍼는 보이지 않는 공기를 밀어 넣어
연기가 계단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이 복도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설계된 길이다.
소화전은 더 직접적이다.
누군가 버튼을 누르면
화재를 알리고, 펌프가 돌아가고,
호스에서 물이 쏟아진다.
이 작은 공간 안에
알림과 가압, 그리고 진압이 모두 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이제 안다.
비상계단은 비워둬야 한다는 것을.
그 앞에 물건을 두지 않는다.
적어도, 예전보다는.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화전 앞은 비워두지 않는다.
그 자리는 어느새 ‘편리한 주차장’이 되어 있다.
자전거 한 대, 두 대, 세 대.
세 식구라면 세 대가 줄을 선다.
문 바로 앞이니까.
경고문을 붙여도,
벌금을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잠깐인데요.” 그 잠깐이 쌓여
항상 막혀 있는 길이 된다.
자전거 거치대는 이미 가득 찼다.
좋은 자전거일수록 밖에 두기 불안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이해는 다른 누군가의 대피로를 막는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윗집 소음에 화가 난 사람이
계단을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를 걷어차고 내려왔다.
누군가가 자전거를 파손 했다고 신고가 들어왔었다.
화는 사라지지 않았고, 문제는 하나 더 생겼다.
관리실은 거치대 증설을 고민한다.
하지만 안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자전거는 계속 늘어나고,
고가의 물건은 결국 사람 가까이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이곳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급한 순간에
가장 먼저 막히는 곳이기도 하다.
화재는 언제나 ‘설마’에서 시작되고,
위험은 언제나 ‘잠깐’에서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