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이선

by 김승수

당신께서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것은 제가 무사히 프라하에 도착했다는 뜻이겠죠? 저는 이곳에서 꽤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 프라하 거리 수호자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거든요. 엊그제는 프라하의 한 작은 교회도 다녀왔어요. 무교인 제가 교회를 온전히 제 의사로 들어간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쭈뼛거리긴 했지만, 금세 미묘한 분위기에 스며들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당신을 위한 기도도 올렸는데, 그 기도가 이뤄졌으면 좋겠네요.

PS. 프라하에서 보내는 편지 나름 낭만 있지 않나요?

from 이선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서울에 있는 한 책방이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독립서점을 돌아다니며 회사와 계약할 만한 신인 작가들의 책을 둘러볼 계획이었다. 서점에는 바 테이블에 서 있는 주인을 제외하고, 네 명 정도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중에는 레드 와인을 홀짝이며 책을 읽고 있는 단발머리 여자도 있었다. 최근에 술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책방들이 많아졌기에 어색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병째로 들고 마시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만 눈이 갔다.


누군가를 지켜본다는 것이 실례인 것을 알았지만, 특이한 관경에 자꾸만 나의 눈길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책을 읽고 있는 줄만 알고 있었던 책방 손님들도 힐끗힐끗 그녀를 쳐다보는 듯했다. 하지만 정작 모든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그녀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책 보다 그녀에게 눈길이 닿는 시간이 많아진 것을 깨달은 찰나, 보풀이 올라온 하늘색 니트가 나의 시선을 가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말을 뱉었다.


“죄송합니다. 실례...”

“그 작가 문장이 괜찮아요. 날 것의 냄새도 나고”

예상외의 답변에 놀라 나는 제대로 된 답변도 하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그런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싱긋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들고 있는 그 책이요. 어제 읽었는데 괜찮더라고요. 신인 작가 패기가 느껴진달까? 신인이면 그런 맛도 있어야죠. 요즘 작가들이 자꾸 말을 고급지게 쓰려고 하는데 나는 별로더라고요.”

“고급지게...”

“괜히 멋있는 척하다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작가가 많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네...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녀는 한 손을 뻗어 악수를 건넸고, 나는 가지고 있는 책을 덮고서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약간 찬기가 도는 손이었다.

“저는 오늘치 독서를 끝내서 이만 갈게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사장님 남은 와인은 킵이요”

“죄송하지만, 와인은 오픈한 이후 보관하면 맛이 변해서, 저희 가게에서는 따로 보관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그럼, 요 친구는 제가 집으로 가져가야겠네요.”


그녀는 취기가 올랐는지 약간 붉은 얼굴로 사장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고, 와인을 품에 안은 채, 가게를 빠져나갔다. 나는 그녀가 떠나간 문을 잠시동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날로부터 일주일가량이 흐른 뒤였다. 그녀가 떠난 이후마저 읽었던 책은 문체가 인상 깊었고, 나는 작가의 다음 소설과 관련하여 계약을 진행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어 회사에 보고를 했었다. 그녀와 2번째로 만나게 된 날이 바로 그 작가와의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이었다. 처음 작가의 책을 접했던 책방에서 작가에게 계약 내용을 설명하고자 하는 찰나,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 하나가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 위스키는 바틀로 시키면 킵되죠?”

“네, 위스키는 가능합니다.”

“그럼, 음... 피트? 피트 위스키? 이름이 맞나요? 그거 맛있다는 데 있나요?”

“있긴 한데, 호불호가 갈리는 위스키라 한잔 드셔보고 구매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아뇨. 그냥 한 병 주세요. 먹다 보면 친해지겠죠.”

“괜찮으시겠어요? 구매 후에는 환불이 어렵습니다.”

“물론이죠. 환불하면 술이 속상해할 거잖아요.”

나는 책방에서 위스키를 시키는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뒤를 돌아보았고, 익숙한 단발머리에 하늘색 니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단숨에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고, 나의 마음속에서는 내적 친밀감이 샘솟았다. 그녀는 태연하게 위스키병의 목을 잡아들고선 책방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그녀를 좀 더 관찰하고 싶었지만, 계약에 대해 질문하는 작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무미건조하지만 예의 있는 말들이 오고 가며 계약서의 서명은 끝이 났고, 회사의 새로운 작가를 환영하는 악수를 하며 계약이 마무리되었다. 작가를 먼저 보내고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자꾸만 구석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던 그녀가 신경이 쓰였다. 피트 위스키가 입에 맞지 않는 듯 찡그리는 독자. 나는 자리에서 수십 번 고민 끝에 그녀의 자리로 향했다.

“저기, 덕분에 좋은 작가와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우리 축하의 의미로 한잔할까요? 제 입맛에는 별로긴 한데 혹시 그쪽 입맛에는 맞을 수도 있을까 싶네요.”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위스키 잔에 위스키를 따르고선, 자신은 위스키병을 들었다. 그러고선 턱을 살짝 들어 나에게 위스키를 권했다.

“작가의 미래와 짠맛 나는 위스키를 위해 ”

나는 완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주도권을 잃은 채 잔을 들고선 잔과 병을 부딪쳤다.

나는 처음 느껴보는 위스키의 짠맛과 높은 도수에 켁켁 거리고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저에 대해 기억나시는 게 있나요?”

“아뇨, 당연히 기억 안 나죠. 하지만, 제가 뭔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니, 저한테 찾아오신 거 아닌가요?”

당황한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들며 이야기를 건넸다. 명함만이 유일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저는 출판사에서 신인 작가를 찾는 사람입니다. 일주일 전에 이 책방을 찾아왔는데, 당신께서 제가 읽고 있던 책의 작가를 추천해 줬습니다.”

“음... 기억이 안 나기는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그때 레드 와인을 하나 병째로 시키신 것 같던데, 그건 다 드셨나요?”

“아 그거요? 아직 남았어요. 생각날 때마다 한잔씩 홀짝이죠.”

“아무튼 오늘도 책방에 계셔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렸습니다. 덕분에 좋은 작가님도 찾아 계약할 수 있기도 했고요.”

“그래요? 그럼, 술 한잔 사주세요. 감사하다면서 맨입으로 때우기는 섭섭하잖아요.”

“술이요? 제가 아직 근무 중이라...”

“그럼, 퇴근하고 오세요. 요 앞 포장마차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방을 나섰지만 퇴근하기 전까지도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의심하며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쫓기듯 퇴근을 했고, 책방 앞에 있는 포장마차로 향했다. 포장마차에 가까워질수록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고, 걱정스러운 마음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앞섰다. 포장마차 커튼을 걷히고 들어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구석에서 빈 소주병 하나와 우동으로 추정되는 한 그릇을 시켜둔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왜 이제와요. 기다리다가 소주 하나 더 시킬 뻔했네.”

“죄송해요, 퇴근하자마자 왔는데, 조금 늦어졌네요.”

“사장님 소주 하나 더 주세요.”


테이블의 소주병은 시간이 갈수록 하나둘씩 늘어났고, 5병째 소주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알딸딸함을 넘어 시선이 약간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도 취기가 올랐는지 얼굴에 붉은빛이 돌았고, 했던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마시면 내일 출근에 지장이 갈 것 같아 자리를 마무리하려 했다.


“우리 이제 마무리하시죠?”

“싫어요. 더 마실래요.”

“더 마시면 힘들어요.”

“하지만 더 마시면 기분은 더 좋아지죠.”

“저는 내일 출근해야 해요.”

“내일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거죠. 더 마셔요.”

“안 돼요. 집도 멀어서 슬슬 가야 해요.”

“전 가까운데요?”

“그거 참 부럽네요.”

“그러니깐 우리 집으로 가요. 내가 초대할게요. 웰컴 투 마이 하우스”

“그런 말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실수하면 어떡하려고요.”

“실수? 하면 되죠. 인간은 다 실수하면서 사는 거예요. 그럼 된 거죠? 가요. 방에 먹다 남은 와인이 있어요.”


그녀의 말에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이성의 끈을 놓기로, 마음먹는 것은 손쉬운 선택이었다. 포장마차를 나온 나는 그녀의 뒷모습만 따라 길을 걸었고, 흩날리는 벚꽃 잎 같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녀의 방에 도착했다.


손을 씻는 사이 그녀는 먹다 남았다는 와인과 잔을 식탁에 세팅하는 듯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녀는 맞은편에 앉으며 나에게 와인을 따라주었다. 나는 잔을 잡으며 이야기를 건넸다.


“오늘 처음 이야기 나눈 사람의 집에 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저도 책방에서 만난 사람이랑 술 마시는 건 처음이에요.”

우리는 약간의 웃음을 띠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미묘한 분위기가 오가는 듯했다.

“이 와인 그 책방에서 가져온 거예요. 책방 냄새가 묻어있는 교양 있는 와인. 어때요? 똑똑해지고 기분이 드나요?”

“똑똑해지는 건 모르겠고, 알딸딸해지고 있긴 하네요.”

“교양과는 멀어지고 있군요.”

“완전히 멀어지는 중이죠.”

“교양 없는 사람들끼리 시답지 않은 이야기나 하죠. 저는 그런 거 좋아하거든요.”

“좋죠. 시답지 않은 이야기. 술 마실 때 하기 제일 좋은 이야기”

“전 프라하를 좋아해요.”

“프라하가 체코 맞나요?”

“맞아요. 체코 수도.”

“여행 다녀왔나 봐요?”

“아뇨. 사진으로만 봤어요. 거리가 예쁘더라고요.”

“보통은 다녀온 곳을 이야기하던데...”

“꼭 가봐야 아나요. 사진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나는 아무런 하지 않았고, 그 사이에는 짧은 적막이 흘렀다.

“그래서 저는 프라하에 갈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환경미화원이 되려고요. 예쁜 거리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는 거죠. 근사하지 않나요?”


환경미화원이 되겠다는 그녀가 특이하다는 생각을 들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반짝였다. 나는 그 눈빛에서 왠지 모를 끌림을 느꼈다. 형언할 수 없는 끌림에 이끌려 그녀에게 입을 맞췄고 우리는 책방에서의 교양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의 시끄러운 전자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 나는 다급하게 시간을 보았다. 07시. 원래대로라면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잠시 침대에서 일어나 옆을 보았지만, 옆은 집주인이 머물다 간 빈 베개뿐이었다. 나는 지난밤의 일을 되새겨 보며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 보려 했지만, 떠오르는 건 숙취뿐이었다. 나는 떨어진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서는 거실로 나갔다. 냉장고 속 물을 마시러 문을 열려고 할 때 눈앞에 메모지 하나가 눈에 보였다.

“집 주소 남겨줘요. 편지할게요.”


편지. 오랜만에 들어 본 단어였다. 전화, 문자, 카톡 다른 여러 소통 수단이 있지만, 편지라... 독특한 여자인 것은 처음부터 느꼈지만, 주소를 남겨달라는 그녀의 손 글씨를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복잡했다. 하지만, 나는 혹시 모를 그녀의 응답을 기다리며 집 주소를 쓰고서는 회사로 향했다.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났다. 전화번호는 물론 이름조차도 모르는 그녀와의 또 다른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책방을 드나들던 일이 지겨워질 때쯤 집으로 편지가 하나 찾아왔다. 나는 편지를 받자마자 본능적으로 그녀가 보냄 편지임을 알아차렸다. 마치 책방에서 그녀를 발견했듯이.

당신께서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것은 제가 무사히 프라하에 도착했다는 뜻이겠죠? 저는 이곳에서 꽤나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요. 프라하 거리 수호자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거든요. 엊그제는 프라하의 한 작은 교회도 다녀왔어요. 무교인 제가 교회를 온전히 제 의사로 들어간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쭈뼛거리긴 했지만, 금세 미묘한 분위기에 스며들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당신을 위한 기도도 올렸는데, 그 기도가 이뤄졌으면 좋겠네요.


PS. 프라하에서 보내는 편지 나름 낭만 있지 않나요?

from 이선

from 이선. 그녀의 이름은 이선이었다. 나의 안부는 궁금하지 않은 듯.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편지. 그녀와 대화를 나눈 것은 단 하루였지만 나는 편지를 읽음으로써 편지의 주인공이 내가 추억하던 그녀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로운 그녀. 나는 그녀의 자유로움을 동경했음을. 나는 그제야 이선에게서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