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김치찌개

by 김승수

서울 도심 한복판, 고층 건물들 속 네온사인 가득한 거리 한편에 놓인 철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간판마저 흐릿해서 가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가게가 있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끈적이는 나무 원목 탁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가게. 왠지 모를 정겨움이 느껴지려는 찰나, 빌 에반스의 재즈 음악이 이질감을 주는 가게. 그런 가게 안에는 장발에 수염이 덥수룩한 ‘그것’이 자리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TV에서는 어린아이를 구하려다 물에 빠진 남성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무심한 듯 뉴스를 보다 조용히 수저 정리를 한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나운서의 냉혈한 표준어가 가게에 메아리치는 순간 끼익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수저를 정리하던 그것은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멀끔한 정장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여성은 가게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자리에 앉았다.


“장사하시죠?”


그것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다가가 하늘색 뚜껑의 물통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그것의 모호한 태도에 잠시 멈칫하였으나, 다른 음식점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아까운 그녀였다.

“김치찌개밖에 없네요?”


그것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김치찌개에요?”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고기? 참치?”


그녀는 그것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아니면 고등어?”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3가지 말고 다른 게 있어요?”


그럼에도 그것은 눈썹을 살짝 들썩일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 알았어요. 그냥 있는 거 주세요.”


그것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물통에 담긴 보리차를 종이컵에 담으며, 가게를 훑기 시작했다. 가게 내부는 전형적인 동네 노포 식당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다만, 이상한 점은 이곳에 오랫동안 장사한 것 같은 가게를 그녀는 오늘 처음 보았다는 것이었다. 21년간 회사에서 근무하며 주변 한식집이란 한식집은 다 가보았다고 자부하는 그녀였지만, 회사 근처에 재즈 음악이 흐르는 김치찌개 집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찰나였다. 잦은 야근과 출장, 직전까지 신제품 토의를 하며 열띤 토의를 한 까닭인지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비비며 졸음을 버티는 것이 먼저였다. 회사 내 팀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피로 따위에 질 수 없다며 속으로 자신을 다그쳤다.


그녀는 눈을 크게 한 번 뜬 후, 휴대폰 속 메모장을 켜 내일 스케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10시 A회사와 미팅, 11시 미팅 피드백, 12시 B회사 콜라보 미팅’


빼곡히 적힌 그녀의 스케줄은 그녀에게 자부심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결혼이나 임신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어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구 엄마로 불리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하였던 그녀였기에, 그녀에게 빼곡한 스케줄은 그녀 자신의 능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과 동시에 회사 내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막힘없이 진급을 해나가고 있었다. 비록 누군가는 그녀를 냉혈한 여자라고 씹어대더라도, 성공한 것에 대한 질투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곧 런칭 예정인 신제품을 그녀가 먼저 나서서 일을 맡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아니냐고 좀 쉬어가면서 하라 이야기할 정도로 그녀는 ‘워커 홀릭’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쳐질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오늘도 어김없이 감겨가는 눈꺼풀을 억지로 뜨게 하며, 그녀를 몰아부쳤다.


졸린 눈과 사투하는 사이 그것이 양은 냄비를 들고 그녀의 곁에 섰다. 보글보글 거리는 소리가 귀로도 들리는 김치찌개가 특유의 시큼한 냄새로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것이 조용히 옆에서 냄비를 들고 서 있자, 그녀는 눈치껏 수저를 옆으로 치웠고, 그제야 그것은 김치찌개를 그녀의 앞에 두고 돌아갔다.


굵은 고춧가루가 떠 있어 딱 봐도 칼칼해 보이는 김치찌개를 뒤적이다 내용물을 확인한 그녀는 형체가 없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참치들을 찾아냈다.

‘참치김치찌개네? 근데 참치김치찌개를 단일 메뉴로 팔아? 신기하네’


그녀는 의외의 메뉴에 신기해하며, 조용히 한 스푼을 떠 입에 넣었다. 마늘의 칼칼하고, 김치의 시큼한 맛이 느껴지다 굵은 고춧가루 입자가 입에서 느껴졌고 뜨끈한 국물이 식도를 넘어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크어’하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혼자 국물 마시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나이를 꽤나 먹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밥 한술에 문자 한번을 보내며 식사를 이어가던 그녀는 칼칼한 김치찌개를 먹으며 스트레스가 풀려서인지 평소보다 개운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10여 분이 흘러 식사를 마친 그녀는 계산대 앞에 서서 그것을 기다렸다. 그것은 조용히 계산대 앞에 서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것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야기했다.


“계산 안하세요?”


그것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왜요? 밥값은 내야죠”


그것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이상하다 싶었어. 그래도 받아요. 저 돈 있어요.”

그것은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는 지갑을 꺼내 들어 카드를 꺼내려고 했으나 이상하게도 늘 들고 다니던 카드는 안보이고, 평소 잘 들고 다니지 않던 현금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지갑 속 만원을 꺼내 그것에게 보여주었다.


“얼마에요? 만원이면 돼요?”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인내심에 한계가 다다랐으나, 따지기도 귀찮아 만원을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자요. 말씀 안 하시면 이거만 낼게요.”

그러자 그것은 조용히 만원을 집어들어 주머니에 넣었고, 슬며시 웃으며 그녀에게는 작은 비타민을 하나 주었다. 그녀는 진짜 이상한 가게라 생각하며, 그것이 주는 비타민을 입에 넣었다. 시고 달았다.

철문이 열렸고, 그녀는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간 가게는 다시 빌 에반스의 재즈만이 울려 퍼졌다.

얼마나 흘렀을까,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 사이에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온몸이 홀딱 젖은 남성이 가게로 들어왔다.


“어우, 밖에 비가 오나 봐요. 온몸이 다 젖어 버렸어요. 혹시 죄송하지만 수건 하나만 쓸 수 있을까요? 아 식사는 하고 갈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것은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그것은 남자에게 회색 수건을 건넸다. 수건을 건네받은 남자는 머리 위에 놓인 불린 미역들의 물기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물기를 어느 정도 털어낸 남자는 벽면에 걸린 메뉴판을 보고선 그것에게 주문을 하였다.


“저기요, 여기 김치찌개 하나랑 소주 하나 주세요. 몸이 으슬으슬해서 술 한잔 해야겠어요.”


그것은 이번에도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다시 가게에는 재즈 음악과 김치찌개 냄새만이 은은하게 흐르게 되었다. 남자는 이런 분위기가 이상하리만큼 편안하게 느껴져 자신이 원래 재즈를 좋아했는지 생각하며 피아노 선율에 몸을 맡기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남자가 음악에 심취해 가는 사이 그것은 보글보글 소리를 내는 양은 냄비와 소주를 남자 앞에 두었다. 남자는 숟가락을 들어 김치찌개를 휘저어 보았고, 불규칙적으로 썰린 돼지고기와 김치가 숟가락에 이리저리 치었다. 굵은 고춧가루가 떠 있어 딱 봐도 칼칼해 보이는 김치찌개였다. 남자는 입맛을 다시며, 소주를 세차게 흔들었고 까드득 소리를 내며 소주를 뚜껑을 열었다.


‘추운 날에 김치찌개에 소주라. 환상적인 궁합이지’


남자는 소주잔에 소주를 따랐고, 곧바로 소주를 마셨다.

“캬”


남자는 소주의 쓴맛을 느끼며 외마디 감탄사를 내었고, 소주의 향을 없애려는 듯 곧바로 김치찌개로 숟가락을 향했다. 칼칼한 국물은 식도를 넘어가며 몇 시간 동안 젖어있었는지도 모를 남자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그렇게 한잔씩, 한잔씩 남자는 술잔을 비워갔고, 어느새 술은 바닥을 향해가고 있을 때였다. 그것은 슬며시 다가와 남자에게 계란말이를 건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말이. 마요네즈도 없이 케챱만 무덤덤하게 뿌려진 계란말이.


“이건 안 시켰는데요.”


그것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TV를 보는 그것을 따라가던 그의 눈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계란말이로 정착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계란말이와 똑 닮은 모습. 그는 홀린 듯 조용히 젓가락을 들어 잘려진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뜨거운 나머지 남자의 입에서 김이 세어나왔다.


“아이는 살았습니다.”


남자는 뜨거움에 호호 불던 입을 잠시 멈추고 서는 멍하니 그것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입에 있던 계란말이를 삼키고선, 남자는 조용히 남은 술을 술잔에 따랐다.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가 눈에 보였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빈 소주병에 잔을 부딪친 후 소주잔을 비웠다. 달콤했다.


철길 옆 간판마저 흐릿해서 가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노포에서는 여전히 빌 에반스의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이달의 친절사원 김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