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함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내려온다. 어제까지 화창하다 못해 더운 날이었는데 어느새 비가 내려 구름이 가득하다.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고 있는 주석은 1인용 소파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다. 비가 창문에 닿아 투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다. 투두둑.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어본다. 꼭 이런 날에 먹을 게 없다.
주석은 우산을 챙겨서 슬리퍼를 신고 문 밖을 나선다. 엘리베이터가 땅 하고 소리를 내며 문을 열어준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다. 투두둑
우산을 펼치고 편의점을 향해 걸어간다. 주석의 앞에 커다란 웅덩이가 그를 가로막는다. 주석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웅덩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걸어간다. 주석이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양옆으로 물이 튀기며 종아리에 물방울이 부딪친다.
어릴 적에는 비 오는 날을 싫어했었다. 비가 오면 밖에서 뛰어놀지도 못할뿐더러, 신발이 비에 젖어 질퍽해지는 감촉을 싫어했었다. 양말이 비에 젖으면 나는 꿉꿉한 냄새는 덤이었다.
그런 주석의 생각을 바꿔준 것은 주석의 엄마였다. 비가 온다고 불평불만하던 어느 날, 주석의 엄마는 나가지 않겠다는 주석의 손을 붙잡고 슬리퍼를 신은 채 함께 밖을 나섰었다. 그리고선 눈앞에 보이는 물 웅덩이를 향해 뛰어갔다.
주석과 그의 엄마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양옆으로 물이 튀기며 종아리에 물방울이 부딪쳤다.
비가 오는 날이 우울하지 않았던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주석은 비가 오면 슬리퍼를 신고선 일부로 물 웅덩이를 찾아다녔다. 그날 그때처럼 물웅덩이 위로 뛰어다니지는 않더라도, 괜히 물웅덩이 위로 걸어 다니며 비를 즐겼다.
주석의 앞에 투명한 일회용 우산이 하나 떨어져 있다. 뒤집히고 찌그러져 더는 사용할 수 없는 우산. 누군가 어린 주석보다 끝내주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석은 우산을 집어 들어 동네 분리수거장에 버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