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초고록 오픈 계기
불이 켜지고 전투모를 쓴 책방지기가 의자에 앉아 포를 조준하듯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책방지기: 책방 운영을 마음먹게 된 것은 군대에 있을 때였습니다. (포복을 하며) 포탄이 빗발치고, 총성으로 귀에 이명이 생기는 전쟁터에서, 책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같은 운명적인 스토리를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치만 그 시절이 저에게는, 도파민 가득한 도시와 서먹해질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에 손이 가게 되더군요.
전투모를 벗어서 책상에 올려두고 옷매무새를 정돈한다.
책방지기: 한때는 책을 읽는 나의 모습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텍스트힙. 지하철에서 남들처럼 휴대폰을 보는 것이 아닌 책을 읽고 있는 나. 저들과 나는 다르다는 느낌. 가끔은 그런 것들이 원동력이 되어서 재미없는 책을 완독하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억지로 읽은 거죠. 뭐 그러다보니 읽은 책이 점점 쌓이고 취향이라는 것이 정해졌습니다. 초고록에 있는 책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부분 소설 위주입니다. 제가 소설을 좋아하거든요.
‘레베카’ 책을 집어 들어 문장을 읽는다.
책방지기: ‘맨덜리 저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우리는 타임머신이나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막심의 어마어마하게 큰 맨덜리 저택에 들어가, 레베카의 흔적을 따라가게 됩니다. (책 뒤에 적힌 가격을 바라본 후) 입장료는 16,800원이군요. 이것이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연극과 뮤지컬도 좋아합니다. 티켓값만 지불하면 지문과 대사가 눈앞에서 펼쳐지니깐요. 물론, 뮤지컬의 경우에는 티켓값이 비싸 자주 보기 힘들긴 하지만요. 돈만 많았다면, 저는 맨덜리 저택의 단골 방문객이 되었을 겁니다. (허공에 와인잔을 잡고 있는 듯한 행동을 하며) 고마워요. 댄버스 부인.
책을 책상 위에 다시 올려둔다.
책방지기: 아무튼 저는 책과 공연. 제가 좋아하는 이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초고록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거나, 사명감을 가지고 책방을 연 것이 아닙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들처럼 저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는 초고록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죠.
무대 중앙에 위치한다.
책방지기: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