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6.
오래간만에 일찍 잠에 들 수 있는 기회를 두고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다. 많은 독자분들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기다리고 계시는데 아무렴 무명작가일지라도 의리는 지켜야 하는 법. 그뿐만 아니라 지금 내 안에 쌓인 게 너무 많다. 글로써 풀어내지 않으면 영원한 짐이 되어버릴 것 같은 것들이 가득하다.
"올해 저는 수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자주 쓰지 못하였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근황을 돌아보며 나에 대해 다시 한번 글을 써보고자 한다.
이렇게 또 갈팡질팡, 오르락내리락 기분과 삶을 한꺼번에 경험해 본 적이 있었을까. 작년에 두려워했던 것보다 그다지 무섭지는 않은 2024년이었다. 이젠 6개월이 지났으니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언제부턴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내가 변해가고 있는 걸까 봐 두렵고, 올해를 이렇게 흘려보내기도 두렵고, 그렇다고 지금 관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시작했으면 끝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수능. 내가 해왔던 공부와는 완전 다른 공부이다. 그렇기에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번 수능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해보고 싶은데.. 수능 끝나고 해보도록 하겠다.)
감정적으로 휘몰아치고, 별것도 아닌 것에 쉽게 화가 나고 삐지고…. 나도 이런 내가 당황스럽다. 제2의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이, 시시각각 기분이 변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가고 있다.
수능 공부도 하랴, 뭐 하랴 바쁜데 회장한테 시키는 건 어찌 이리 많은지… 열심히 하고 있는 데 왜 이렇게 나한테 뭐라고 그러는 것만 같은지… 책 읽고 싶은데 읽으면 다시 내 사고방식으로 돌아와 국어 지문 읽기 힘든데… 참다 참다 한번 읽고 행복해하다… 다시 공부해야 할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고… 그럼에도 다시 공부해 나가고… 어서 수능이 끝났으면 좋겠고….
이게 현 나의 머릿속에 같은 레퍼토리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생각들이다. 샤워하다 울고, 밤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따지고(왜 나를 수능 보게 하시냐고), 내 모습을 처량해하고… 나에게만 집중하여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너무 많다.
내가 왜 이럴까.
나도 알 수 없다.
수능 끝나면 다 잘될까. 나 대학 갈 수 있을까.
그건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니다.
상상하고 고민하고 생각하다 기도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이 길을 시작한 건 내가 시작한 게 아니요, 하나님이 시작하신 거라고. 난 그저 발을 묵묵히 움직여 걸어갈 뿐이라고.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성실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이 결론이 얼마나 머릿속에서 빨리 잊혀지는 줄 아는가? 이 생각을 올해만 들어서도 50번 이상을 깨닫고 잊고 다시 기억하고 다시 깨닫고를 반복한 것 같다. 두려워하는 것이 비록 자연스러운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에 서 있다면 결코 두려움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무얼 두려워하는 건가.
그렇지만 나는 두려워했다.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가라 하셨으니 하고 있고, 모든 걸 기도로써 시작해서 지금 나아가고 있다. 잘하고 있는 건지. 그걸 모르겠다. 그걸 모르겠어서 불안하다.
난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어떤 길로 나를 이끄실지도 모른다. 그래도 발을 떼서 움직이기로 했다. 내가 믿는 분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기에. (이 말도 안 되는 공부조차도 다 들어 쓰실 분이시니까.)
그렇게 결심하고 다짐하고 되뇌는데도 너무도 지칠 때가 있다. 난 행복하고 밝은 사람인데 점점 힘들어서 그 밝은 기운이 시들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남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겠다고 다짐했지만,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내 삶 살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 신경 쓸 겨를이 있냐고 나에게 반문하곤 한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음에 놀랐다. 지금 남의 상황과 아픔을 돌아볼 시간은 없다고, 내 삶 하나도 너무 바쁘고 아프고 지치는데 그런 것까지 하면 어떻게 살려냐는 질문도 내 머릿속에서 맴돌곤 한다.
미소를 짓기가 힘들다. 무언가를 하면 그것을 해냈다고 좋아할 여유는 없고 다음에는 뭐하지 하는 생각만 하게 된다. 불안하니까 더 내 삶이 공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웃다가도 쓱 웃음기가 사라질 때도 있다. 자기 연민이 너무 커져서 남이 나를 힘들게 하거나 짜증나게 하면 바로 기분이 나빠진다. 거듭 말하지만 난 이기적이다.
이런 나의 못난 모습을 알아가고 내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소용돌이치는 생각들 속에서 난 한 가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다 나를 성장시키시는 것.
내가 영적으로 성숙하여져서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묵묵히 걸어가고 지쳤을 때 주님께 매달리는 법을 배우게 하시는 것.
나의 연약한 모습을 통해 나의 마음을 넓히시는 것.
이 희망을 깨달았다고 해서 내 갈 길이 밝히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의욕이 막 샘솟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용기와 힘을 딱 적확히 부어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깊은 바다 앞에 서 있다. 난 짙은 회색 안개가 둘러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그저 더듬더듬 걷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믿는다.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름다운 빛을. 나와 함께 걷고 계시는 주님을. 이 안개가 걷히고 내가 결국 결말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내 입에서 찬양과 감사가 튀어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말이다. 난 해피 엔딩을 만드실 주님을 기대한다. 그게 꼭 내가 생각하는 해피 엔딩이 아니어도 말이다.
난 이 모든 것이 다 지났을 때 잘 지나왔다고 나 자신을 격려해 줄 수 있게 되길, 별거 아니었다고 여기며(지금까지 지나왔던 모든 힘든 일이 그랬듯이) 웃어넘길 수 있게 되길, 그리고 다시 한번 더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