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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연약하고 여린 나는

2024년의 기록.

by Joy to the World

2024년을 살아냈다. 끝내. 나는 너무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그 길을 결국은 살아냈다.

괜찮냐고? 괜찮다. 충분히 살아냈고, 만족한다. 결과가 그만큼 나오지 않아서 힘들지는 않느냐고? 아무렴 어때. 난 살아있는 것으로도 지금 기쁘다. 아직 할 게 많은데.

사실 이렇게 얘기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아니라 생각이 필요했다. 실로 나는 괜찮았다. 그때 내게 달라진 것이라고는 정말로 수능을 봤다는 것.

그렇게 생각했다. 수능 점수에는 만족했다. 내가 무엇에 그리 상심했을까. 아니, 사실은 한 달 뒤. 그렇게 많은 결과 앞에 나는 무엇을 두고 그리 눈물을 흘렸는가.

수능이 끝나고 그딴 것들에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던 내가 결국은 눈물을 흘리게 되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괜찮다. 그러나 괜찮지 않던 때도 있었다. 아니, 괜찮지 않은 게 아니라 생각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더 깊이 깊이 파고들었던 것 같다. 더 많이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점이 사람들에게 얼굴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는 시점이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나에게는 수험 생활 자체가 스트레스였으니까.
작년에 너무 많은 일들을 짐으로 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또한 나는 오늘은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사람들은 나의 점수와 내 현재 상황을 알면 다양한 얘기를 한다. 뭐, 성격이 나빠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거의 다 기분 나쁜 얘기다. 한 번 더 해보지 않겠니 부터 시작해서 사실 이게 홈스쿨러의 한계가 아닐까, 세상을 알아야 한다, 등등등 안타까워서 하는 얘기인 줄 알겠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걸 실패라고 여기겠지. 수시 다 떨어지고 수능 점수도 영.... 아닌 것을 그들은 실패라는 단어 속에 그저 나를 가두고 싶어하는 것만 같은 느낌에 나는 더 얘기할 수 없었다.

나는 실패라고 여기지 않았기에.
나는 수능 점수라는 것보다는 다른 것이 중요했기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다른 걸 얘기하고 싶다. 나는 이리도 연약한 사람이지만 나의 삶 속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를.

브런치에서 시집을 내기 위해 이런저런 나의 기록물들을 뒤져보았다. 이리도 강인한 친구가 있을까. 어쩜 저렇게 당차고 희망찬 친구가 있을까. 나인데도 낯선 그 모습에 내가 괜히 대견스러웠다.

작년에는 그토록 아프고 그토록 힘들어하며 나를 위해서만 눈물을 흘렸던 내가. 그렇게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희망에 차서 다짐하며 나아갔던 내가 일기장 속에, 여러 글 속에 버젓이 살아 있었다. 그런 나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나는 내가 처참히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입시라는 문턱 앞에서. 내 뜻대로는, 내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 이곳에서.

실패를 겪은 것이 한 둘인가. 나는 실패를 많이 겪은 사람임을 강조하고 싶다. 실패가 없다면 나라는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 실패 앞에 무너진 내가 어떻게 할지 몰라서 두려웠지.

그리고 나는 수능 점수에, 수시에 떨어져서 운 것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곳애서 인정받지 못했기에, 실망했고, 컸던 기대가 무너졌기에 울었다. 정확히 말하면 실패에 운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실패라고 일컫는 그 상황 앞에서 발악을 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나는 하나님이 이 길을 걷게 하셨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나는 나의 홈스쿨링이라는 삶에 자신감이 있었기에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또한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 순간 기준을 바꾸어 생각하고 있었다.

내 삶도 대학에 가야 인정받는 것이라고.
내 삶 가운데서 내가 좋은 대학에 가야만 성공하는 것이라고.
대학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보내주는 것이라고.
나는 잊었다. 세상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다는 것을.

그래서 따져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
난 어디로 가야 하는데요. 다시 하기 싫어요. 하라고 해서 한 거잖아요. 근데 왜. 도대체 왜.

어쩌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그러나 어떻게 보면 짧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 속에서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생각했고, 괜찮아질 수 있었다.

하나님이 나의 아픔을 알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아프게도, 내 기준이 변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려놓았다. 사실 수능 볼 때보다 내 삶의 주도권을 내려놓을 때가 더 두려웠다. 내 삶 자체를 내가 계획하고 나아가기보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계획을 신뢰하겠다는 얘기였으니.

내가 너무도 연약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외치던 나는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면서 나의 삶을 다시 내려놓고 있었다. 그렇게도 세상 따라 살지 않겠다고 애썼던 나는 어느새 기준을 바꾸어 생각하고 있었다. 수능이 아니라 나는 이 점에서 실패할 뻔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섰다. 다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 작년은 의미 없는 해가 아니다. 가장 큰 도전이자, 가장 멋지게 살아냈던 한 해이기도 하다. 가장 많이 넘어졌지만, 그만큼 상처도 입었지만, 그만큼 나는 자라났기에.

왜 그리 무식하게 맞섰느냐고 묻는 사람 많겠지만, 입시에서 학원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단 걸 입증해보이고 싶었다. 내 고집일지 모르나 차라리 장렬하게 전사하는 편을 택하고 싶었다.

그게 2024년이었다. 연약했지만 또 자랑스러웠던.

나는 연약했지만 그래도 단단했다는 사실을 오늘 새삼 깨닫게 된다.

수능이 끝나고, 모든 결과가 나온 뒤, 길다고 할 수 있으며 짧다고도 할 수 있을 그 기다림의 시간을 나는 보내면서 다시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나의 생각과 삶을 다시 보고, 다시 기도하고, 다시 다짐하는 시간들이 찾아왔다.

참으로 신비하신 분이시다. 먼저 나의 기준을 다시 재정비하게 하시고, 또 꿈을 꾸게 하신다. 꿈을 뺏어가지 않으신다. 이렇게 잘 깨질 것 같은 그릇에 가장 큰 꿈을 마음껏 담아놓고 꿈꾸게 하신다.

지금 이 시간 나를 격려하고 싶다. 그리고 많은 아픔을 견뎌내고 다시 도전하고자 하는 분들도 격려하고 싶다. 잘 했다고. 끝없이 도전하고 나라는 사람을 지켜내려는 그 도전이 가장 값진 도전이라고.

그리고 이 작가야, 너 글 잘 쓰더라. 작가될 수 있겠더라. 끝까지 하자. 힘내. 살아내자.

그렇다. 나는 연약한 사람이다.
나는 연약하나 주는 강하시다.
난 그리 연약하지 않다.
나는 성장하는, 세찬 바람에 줄기가 더 굳세어지는 아주 작은 나무이기에.

꺽여지더라도, 실패하더라도 실패 속에 열매를 맺게 하실 창조주의 손길이 내 위에 있기에.
나를 세상을 지으신 분이 붙드시고 계시기에.
이토록 연약하고 여리나 굳건하다.
그게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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